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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공개하고 바뀐 것들

난 그냥 솔직하게 썼을 뿐인데.

by 정윤

첫 에세이를 출간하고 달이 바뀌었다.


다른 생각없이, 이 글이 공개되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고민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내 솔직한 심정을 글로 썼다.


육아로 인한 우울감, 거기에 겹쳐진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우울로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나에 대한 이야기.

그 안에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주변에 공개했을 때 기대한 반응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출판사와 약속한 기간 안에 하나를 이미 써낸 상태에서 또 다른 작업을 했던 것이라서 크게 기대하는 것도, 뭔가 생각해본 것도 없었다.


그냥, 내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구나, 하는 정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겐 그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나보다.

나 혼자 성취감을 느끼고 말 일이 아니었다는 걸 그들의 반응을 보고 알았다.


아빠는 내게 미안함을 표현했다.

내가 그토록 오랜 시간 홀로 우울에 허덕이게 놔둔 것에 대한 미안함.

늘 잘 하는 딸이었던 나를 좀 더 지켜봐주지 못하고, 마냥 '잘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두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


시어머님은 남편에게 전화해 혼을 내셨다고 했다.

남편이 좀 더 잘했어야 하는데, 네가 못해서 며느리가 대신 힘든 게 아니냐며.

호통을 치듯 혼을 내시고 제발 귀한 며느리 안 힘들게 잘하라고 당부하셨다고.


엄마는 바쁜 중에 시간을 내 하루를 오롯이 나와 함께 했다.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고, 나를 키우며 늘 마음에 걸렸다던 미안한 것들을 늘어놓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미안했던 것들을 털어 놓았다.

본인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들 때문에 형성된 성격이 나를 힘들게 만든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미안하다고, 엄마가 미안했다고 이야기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그렇게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걱정어린 연락을 받았을 때, 솔직히 나는 조금 유난들이시라는 생각을 했다.

글은 글일 뿐이고, 그저 내가 나의 감정과 상황을 정리하며 썼을 뿐인 것을.

왜 그게 마치 지금 나의 전부인양 저러시는 건지.


하지만 엄마와의 하루를 보내고 난 후.

나는 그 짧은 에세이가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 글로 갑자기 유명해진 것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상을 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내게 칭찬의 말이나 비평의 말들을 쏟아내는 것도 아닌데.

그냥, 엄마와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우리가 서로에게 쌓였던 것과 함께 쌓아왔던 것을 정리하는 그 몇 마디를 통해.


내가 글을 쓰고, 그 글을 공개함으로써.

주변 이들 모두가, 내색은 안 해도 눈으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출간한지 몇주만에 불현듯 깨달았다.


글을 쓰는 게 뭔가 대단한 건 아니다.

단번에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고, 단번에 인생이 뒤바뀌지도 않는다.


하지만 글을 씀으로써.

나는'기회'를 얻었다.


사람들과 다시 한번 연락할 기회, 잊었던 것을 떠올릴 기회, 한때 소중했었으나 이제는 우선순위가 밀린 것들을 다시금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



글을 쓴다는 건, 그리고 그 글을 공개한다는 건.

그렇게 삶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꿈꿀 기회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이번 출간을 통해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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