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없는 하나님의 의지

창세기 1장 14절-18절

by 부라톤

" 왜 또 비 오고 난리야!'"


당연함은 감사를 잊게 한다.

비, 바람, 낮, 밤, 계절 등은 당연한 현상이 아니다.

우주와 자연의 움직임은

생명의 호흡, 성장, 번식을 통한 충만함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며, 원칙이다.

또한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세워진

생명의 터전이다.


깨뜨릴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을 향한

의지가 자연법칙이다.

그 의지가 생명체 안에 녹아있다.

자연은 그 의지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애쓴다.


그 법칙을 찾아낸 과학자들을 칭송하고

매년 노벨상을 수여하며 잔치를 벌이지만

정작 인간은 자연을 만든 하나님은 부정하고

무시하고 덤빈다.

자연을 끊임없이 훼손하며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은 어떻게 바라보실까?


하늘의 궁창은 대기다.

태양과 별들이 강력한 빛을 뿜어내지만

대기가 없다면 거리 순서대로 뜨겁기 순서대로

용접할 때 탁탁 튀어 오르는 불빛처럼,

낮에만 이글거리는 용광로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불덩이에 불과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다른 행성들은 그렇지 않은가?


셋째 날, 땅에 공급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시의적절한 공급자가 되기 위해

생명 주기를 조절할 환경이 필요하다.

태어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열매들이 다시 태어나고 자라는

주기를 통해 공급자들이 먼저 번성해야 한다.

그들이 번성해야 동물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땅의 공급자들은 대기를 깨끗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대기가 만들어지기 전 공급자인

식물들이 땅에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우주의 별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 별들의 에너지들을 빛으로 공급하셨다.


14절은

지구를 향하는 공급 에너지의 가장 적절한 배열,

그 배열된 빛과 에너지를 붙잡아

생명을 위한 주기를 담당할 대기를

하늘의 궁창이라는 공간에 만드시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지구의 축의 방향을 살짝 비틀고

태양계 행성계의 배치를 통해 생명의 유지를 위해빛의 양을 배열한다.

동시에 통과하는 빛을 가두어

에너지원으로 배분해서 사용하고,

에너지 흐름을 유지하는 대기를 만든다.


빛이 강력하게 달려올 때 대전 입자들을 잡아놓는

밴앨런대와 지구 내부의 외핵과 맨틀의 움직임을 통해 자기장을 형성한다는 다이나모 이론은

함께 날아오는

생명을 위협하는 대전 입자를 차단하는

땅(지구)의 생명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잘 설명한다.


지구를 향하는 빛과 에너지들 중 선택된

에너지의 방향이 땅을 향해야

땅의 공급자들이 주기의 흐름 가운데 역할을 감당하고 생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기의 흐름을 우리는 시간의 길이순서대로

징조(하루에도 계속 변화하는 온도, 습도, 비, 눈, 맑고 흐림의 정도) 날(낮과 밤)

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 해(1년) 으로구분한다.

(지구의 축의 방향이 바뀌는 세차운동, 자기장의 흐름의 방향 변화 등의 주기도 있다)


15절

이 흐름이 생명체가 운동하고

살아갈 터전인 땅을 비추게 하신다.

직진하는 빛들이 직진해서

지구를 통과하여 지나쳐 버리게 하지 않고,

대기를 통해서 굴절되어 땅에 생명이 살아가는

환경을 위해서 에너지 공급원이 되도록

창조물들의 위치를 재배열하신다.


16절-18절

낮을 주관하게 하는 빛인 태양

밤을 주관하게 하는 빛인 달

(태양의 빛을 나누어 낮엔 태양으로

밤엔 달로 태양 빛을 반사하여 역할을 감당한다.)

빛의 조절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체들의 리더를 선택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생명체가 활동하게 될

낮의 리더로 태양을,

휴식을 위한 밤의 리더로 달을 리더로 부르시는데

둘은 태양의 빛과 에너지를 공유한다.

과다한 태양의 에너지를 대기를 통해서

총양을 조절하고, 낮과 밤의 리더들에게

역할분담을 주어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힘의 균형을 맞추었다.


하나님은 억지를 부리는 독재자가 아니다.

그는 피조물들이 가진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낼

환경부터 만든다.

하나님에게 명령은 인간의 명령과 다르다.

인간의 명령은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 타자를 향한 압력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피조물이 자신이 만들어진 목적을 찾아

가장 큰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부르심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조물들이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 데 큰 관심이 있다.

타협은 없다. 이것이 항상성이다.

자연법칙들이 인간처럼

자신의 이익과 감정과 이해정도에 따라

타협하고 변덕을 부린다면 생명체들은

벌써 멸종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피조물인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자신의 이해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존재 유무마저 판단한다.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하나님은 타협 없는 생명을 향한

의지를 자연에 심어놓으셨다

이것이 어려운 말로 일반 계시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인간처럼 감정과 상황에 따라

기준이 바뀌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발전을 드러낼수록

생명은 신음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하나님이 허락한 시간에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빛난다.

위대하다.


눈부신 생명의 고동소리에 우리가 감격하는 이유는

그들이 만들어진 목적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다.


피조물은 창조된 목적을 분명히 알고 살아갈 때

가장 빛난다.


가장 빛나는 인생을 살고 싶은가?

눈부신 자연처럼 변치 않는

젊음과 생명을 누리고 싶은가?

창조자를 바라보고 그에게 물어보라.


나를 만드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반드시 답해주신다.


그것이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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