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만나다. 2-거룩

by 부라톤

사명을 발견하는 일은

내 안의 가능성을 찾는 여정이다.

이 가능성은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세상의 성공과 영향력이라는 환상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삶의 목적을 구체적인 삶의 목표로

전환시키는 소명의 삶을 사명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과학 가정 매스컴 등

사회의 기둥이 되는 영역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꿔내기 위해 꿈과 사람을 키워간다.

함께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도전하며 격려하며

세워주는 협력의 연대다.


이것이 거룩이다.

부르심에 반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신기루와 같은 세상 나라의 왕좌에 앉고 싶은

욕망을 거두어내는 과정을 성경은 거룩이라 말한다.

기독 영성의 핵심은 거룩에 눈뜨며 욕망의 옷들을

벗어던지고 나의 영혼의 성품을 단련하는 과정이다.


거룩한 척 근엄한 목소리를 내며 권좌로 가려고

몸부림치며 애쓰는 모습은 안쓰럽다.

그러나 모두 안다.

그들은 거룩한 삶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거룩한 삶과 세대의 연합은

구성원들이 사회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토대를 만들고 탄탄하게 다지는 일에

삶을 기꺼이 던지는 일이다.

세대를 초월한 삶의 거룩한 연합은

개혁의 원동력이다.


개혁은 언제나 소명의 변방에서 시작되어

중심부로 확장되었다.

그 변방은 중심부의,

기득권의 문화를 부러워하거나 동경하지 않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사회를 사회답게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보이지 않는 운동은 칼끝을 내민 정사와 권세들의 강력한 힘과 무력의 협박과 핍박을 피와 눈물과 인내로 버텨낸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잠자고 있던 영혼의 갈급함이 깨어난다.

용기를 되찾은 사람들은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함께 전진한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걸어온 민주주의의 발걸음이다.

동시에 우리가 경험한 거룩함이다.

거룩은 묵묵히 조용히 세상의 변화를 가져온다.


거룩은 수도원이나 기도원의 골방에서

혼자 기도하며 경험하는 무아지경의 종교체험이

아니다. 불라불라 기도하며 큰소리로 외쳐대며

하나님을 찾아내는 울부짖음또함 거룩이 아니다.

종교체험을 거룩으로 오해하지말자.


아합의 선지자들도 그렇게 울부짖으며 종교체험을

엘리야 앞에서 선보이길 원했다.

그러나 거룩한 불은 협박과 조롱 앞에서도 조용히 자신의 부르심의 길을 걷는 엘리야의 제단에 내려왔다.


안타깝게도 주류 한국 기독교는 민주주의의 발걸음과 동행하기보다 압제자들의 통치기반을 정당화시키는 교조적 도구가 되어 영광을 누렸다.

마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요엘의 따귀를 때렸던 선지자처럼 독재자를 추앙하고 독재자와 그 딸의 로비스트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빈다.


반공을 부르짖으며 제주도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청년들이 자칭 대한민국 장자라는 교회의 청년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말년에 청빈한 삶으로 추앙받던 그 교회의 목사를 아직도 존경의 대상으로 받드는 기독인들이 많다. 그의 정신적 후계자는 강남 한복판에 권력 카르텔의 사교장으로서의 교회를 만들었고 그의 추종자들은 군사정권에 달라붙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독재자를 축복하고 후에 고. 소. 영 정권으로 대한민국을 국가마저 성공이라는 욕망의 도구로 타락시켜버렸다.


그들의 하나님은 다름 아닌 바알이다.


그 정신을 이어받은 교회와 기독단체와 정치세력은 아직도 빨갱이를 외치며 서울의 한 복판을 차지하고 마치 기도회에서 부르짖듯 욕망을 쏟아놓으며 그것을 거룩이라고 생각한다.


거룩은 갇힌 십자가 첨탑의 고급진 건물에서

모여 울부짖는 기도모임이 아닌 영혼의 성품을

묵묵히 현실에서 길러가는 발걸음이다.

홀로 수행의 길에서 선택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만 현실을 외면한다면 거룩이 아니다.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은 거룩의 필수조건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매일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인 돈은 현실에서 만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사명의 길을 감당하고자 하는 열정과 재능이 있음에도 살 곳과 아이들을 기르기 위한 양육비, 커리어 평판 때문에 기득권과 불의에 타협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이는 게 바알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겠는가?

거룩의 발걸음에 일용할 양식은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흙수저라고 거룩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


거룩의 발걸음은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를 가리지 않는다.

태생에 따라 고통의 정도와 처한 환경의 차이가

존재할 수 있지만 그 발걸음은 고결하며 빛난다.

거룩한 영혼의 성품을 지켜내며 동시에 현실에서

매일의 삶을 살아내야 하므로 직업을 가진다.

직업선택이 소중한 이유이다.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라는 이유로 사람마다 익숙하고 밀접한 직업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직업의 선택으로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여정은 거룩을 현실에 풀어놓는 여정이 뒷받침된다면 어떤 직업이든 당신이 빛나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모든 직업이 모두 거룩을 풀어놓는 직업이 되진 못한다. 꼼꼼하게 부르심과 사명을 감당하며 동시에 나의 적성과 덕을 펼쳐내는,

남에게 인정받고 선망받는 직업이 아닌 거룩을 삶에 풀어놓을 수 있음에 후회가 없는 매일의 도전이 돼야 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잊게 만들고 바알의 세상에서 선봉장이 되는 경우도 많다.


거룩의 길은 외롭고 고되다.

황폐한 땅 한가운데서 홀로 밭을 일구는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짙은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함께 밭을 일구고 있는 친구가 곁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친구들이 점점 모여든다.


서로가 서로의 영혼을 보듬어주는 동행자가 되어

고통과 눈물과 희생의 의미를 되새긴다.

역사는 거룩한 삶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영혼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

나도, 당신도 거룩해질 수 있다.


거룩의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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