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맙다고 말하기, 사랑한다고 말하기 3. 사람들과 함께 하기
2. 고맙다고 말하기, 사랑한다고 말하기
살면서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기 가장 힘든 말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사랑합니다" 일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언제였던가요? 지나가는 소리라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참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왜 이 말을 그동안 못 했을까? 왜 내 곁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이렇게 방치해 놨을까? 하는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말하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입 밖으로 꺼내고 나면 그렇게 미안해집니다.
말 한마디,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힘인가 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언어의 힘입니다.
"어떤 말을 하는가?"가 삶의 방향과 질을 결정합니다.
숨 쉬는 일을 쉴 수 있나요? 눈 깜빡이는 일을 쉴 수 있나요?
“야 심장아 너 매일 일하는 게 힘든데 좀 쉬어라”하실 수 있는 분 혹시 계신가요?
하루 세끼 아니 한 끼라도 쉬려고 하면 우리의 몸은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우리의 몸은 쉴 수 없습니다. 한 순간도 일하지 않으면 생명이 멈추고, 병이 듭니다. 눈 깜빡거리지 않고 버티면 실명합니다. 심장이 멈추면 죽습니다. 우리의 몸에 담긴 생명의 샘물인 영혼도 결코 쉴 수 없습니다.
그 영혼의 양식이 바로 사랑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현실도 멈출 수 없습니다. 소비, 생산, 움직임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양재 윤봉길의사 기념관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충무로에서 갈아타고 10시까지 신분당선 시민의 숲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장애인협회의 시위가 딱 충무로에서 한다고 방송이 나오더니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에서 20여분이 넘게 멈췄습니다. 지하철이 멈추니 모든 사람들이 발이 묶였고 저는 30분 일찍 나왔지만 지각하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발을 동동 구르고 아우성이 넘쳤습니다. 지하철 하나만 잠시 멈춰도 삶이 엉망이 됩니다. 몸도 사회도 멈추는 순간 엉망이 됩니다. 움직이면 문제가 생기고 멈추면 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멈추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멈추자니 불가능하고 나아가자니 문제가 생깁니다. 참 골치 아픈 것이 인생사입니다.
문제가 반드시 생깁니다. 매 순간 생깁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언제나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에서 찾을 수 있지 않던가요? 모든 희망이 다 사라진 것 같은 때도 남편과 아내의 위로 한마디, 부모님의 위로, 자녀들의 파이팅소리가 우리를 일으켜 주지 않던가요? 그것이 사랑의 힘이며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사랑을 전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리의 입이 가장 큰 일을 합니다. 영혼의 속삭임을 전하는 것은 입이니까요. 입을 열어 사랑한다고 말해보세요. 그리고 꼭 안아주세요. 미안하다고 하세요,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시리죠?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 희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3. 이제 손을 잡고 함께 가자
사랑받은 우린 이제 살았고, 사랑 안에서 희망을 얻었습니다. 생명의 길을 세상은 막으려고, 더 큰길로 우리를 유인하려고 유혹합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고요할 때도 있고 폭풍우가 몰아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찾는 것이 나침반입니다. 삶의 나침반이 올바를 방향을 가리키도록 하는 힘은 바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질문은 사랑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낄 때 찾아옵니다. 좌절과 분노로 날이 서있는 사람들은 결코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무서워서 함께 있는 척할 수는 있겠죠. 독재자 곁에 결국 아무도 남지 않습니다. 무서워서 같이 있는 척했을 뿐이죠.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들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지 말고 못 이긴 척 한번 잡아보세요. 삶이 뒤바뀌는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지금까지 버티면서 자존심을 지켰던 시간이 아까운가요? 그 자존심을 택하고 고립될 것인지, 자존심은 잠깐 내려놓고 손을 잡을지 우린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인생 그것으로 충분하잖아요?
가치는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탁월해도 남들이 귀 기울이지 않고 함께 손뼉소리를 낼 수 없다면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이 손뼉소리를 공감이라 부릅니다.
공감 - 함께 느끼다는 의미죠. 이 단어는 참 따뜻하고도 울림이 있습니다. 소리부터 울립니다. 공이라는 단어와 감이라는 단어가 함께 울리듯 우리도 함께 울려야 합니다. 우리는 뭔가 거창하고 가치 있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할 때 마치 정치인들처럼 나라와 민족 등등의 당위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나의 살보다 가치 있는 것이 있나요? 저는 제 삶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야 가정도 있고 나라도 있고 민족도 있는 것이죠. 내가 살 수 있는 법은 손을 잡는 것, 옆의 사람, 뒤의 사람도 얼굴을 돌려 옆사람 손잡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 문장으로 설득하는 법"의 저자 블레어 워런은 10년 동안 설득만 연구한 설득전문가입니다. 그는 "사람은 자신의 꿈을 격려하고 실패를 당연하게 생각해 주며 의심을 덜어주고 나의 적에게 같이 돌 던져주는 사람에게 열광한다"고 합니다.
아는 것이 많다고 사람은 열광하지 않습니다.
내 손잡고 내편 돼 주면 열광하는 것이죠, 이것이 함께의 힘입니다.
그것이 나를 우리로 이끄는 힘, 운동이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으신가요? 뒤집어 버리고 싶으신가요? 손을 잡으세요. 그리고 함께 먹고 함께 웃어요, 당장 세상이 뒤집어집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된 거 같네요.
중학교 재학 중 망막박리로 실명을 한 후에 온갖 고통과 차별을 이기고 한국인 최초의 맹인박사가 된 , 미국 백악관 장애인차관보자리까지 오른 강영우박사님을 아시나요?
그분의 책 “도전과 기회, 3c 혁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침식사 때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기도를 하는데 3살 먹은 아들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우리 아빠 눈 좀 떠서 나와 같이 야구도하고 운전도 하고 세발자전거도 타게 해 주세요” 이 기도를 들은 아버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다고 언젠가 아버지의 눈이 떠질 거라고 희망의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들에게 힘이 되고 밝고 명랑하게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 중에 갑자기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 머리맡에 있는 성경책과 동화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불을 끄고 읽었을까요? 켜고 읽었을까요? 끄고 읽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요? 성경점 자책, 동화점 자책으로 맹인들만 읽을 수 있는 손가락으로 읽는 책이었기 때문이지요. 눈이 보이는 사람은 불을 끄면 책을 읽을 수 없지만 그는 손가락으로 읽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야구, 운전, 자전거 타는 일은 솔직히 아빠가 앞이 안 보여서 하지 못한단다. 엄마가 대신해줄 수 있을 거야. 대신 아빠는 깜깜한 밤에도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네 마음속에 하나님의 그림을 그려줄 수 있어 이건 아빠만이 할 수 있게 신께서 기회를 주신 거란다”
아버지로서 아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하면 아이의 실망한 마음을 더듬어 주면서도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때 그의 머리에 섬광처럼 떠오른 지혜로 그는 아들의 세계를 기쁨으로 환하게 밝혔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작은 곳에서 기쁨을 찾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함께 손을 잡을 때 비로소 나의 삶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일으켜 복을 받는 하루 일주일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