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영혼의 성품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나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인생에서
한 번씩은 찾아온다.
(기쁨으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할 수도 있다. 깊은 패배감이나 깊은 우울의 형태로도 찾아오기도 한다.)
보이는 현실의 삶에 집중했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
성공은 나의 삶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하루하루 반복되는 생존을 위한 삶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육아에 지쳐 쓰러질 때,
인생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물어보게 된다.
정체성이 급격하게 흔들린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인가?
철학자도 아닌 내가 철학자가 되는 시간.
강렬한 쾌락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메우지 못해 허덕이는 영혼의 갈증을
경험해보았는가?
이성에 근거한 판단과 결정으로
차근차근 부와 성취를 쌓아 올렸지만
알 수 없는 폭풍우로 허물어지는 인생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경험이 있는가?
과학이론과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목마르다.
인간의 능력으로 채울 수 없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으로 허덕이는
나의 마음과 영혼의 갈급함.
눈에 보는 삶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영혼의 안식과 성숙을 위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몸부림의 과정이
우리를 영혼의 소리를 듣도록 이끌어준다.
1.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러서는 영성이란
두려움 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본성이라고 말한다.
진리를 갈급히 찾기 시작하는 일은 영적인 성숙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보이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다가 실패하고
뒤돌아섰기 때문에 진리를 찾는 일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갈망 때문이다.
진리를 찾는데에 두려움이 없어진다.
찾아야 삶의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성의 시작은 나 자신이 되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발전이 지속될수록
가치 있는 지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이라고
단언한다.
타인이 높이 평가하고 세상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내 마음에 투영시켜서
나 자신을 만들어왔는가?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 여정이
영혼의 성품을 다루는 시작이다.
2. 보이지 않는 영원의 삶에 대한 관심
영성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사람들은
마치 사이비 이단을 마주친 상황과
비슷한 거부감을 느낀다.
올바른 영성의 추구는 소명의 삶으로
인생을 인도한다.
때로는 지독한 고독의 한가운데서
몸부림치지만 그 몸부림으로 지난날의
보이는 세계에서 쌓아 올린 이미지들을 털어낸다.
결코 사이비 이단에 빠지는 일은 없다.
사이비 이단에 빠지는 일은 외로움 없이,
치열한 자기 성찰과 몸부림 없이 진리를 쉽게
얻으려는 자들이 빠지는 오류다.
보이는 세계의 여정과 성취가 삶의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에
지성으로 충만했던 지인이 갑자기 종교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며
"잘났던 사람이 또 저렇게 맛이 가는구나"라고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가?
보이지 않는 영원의 삶에 대한 갈망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특권을 누리기 위한 조건은
인간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생존만을 위해서가 아닌,
보이는 세계의 가치를 추구하고 만족하는
꿈꾸는 이미지로서의 내가 아닌,
보이는 세계에, 이 시간에, 이 공간에
존재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나를 존재케 하는 근원이 무엇인지
나에 대한 탐구가
인간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일제의 탄압에서 누군가는
당장의 만족과 이미지를 위해 제국 신민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민족의 독립과 주권국가
국민으로서 자유의 영광을 위해 삶을 바쳤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갈망은 삶의 목적과
자신의 인생을 던지는 목표를 정하게 한다.
이 갈망은 소명의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가슴의 열망을 깨워 궁극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생으로 인도한다.
3. 기독교는 보이지 않는 영원의 빛을 말씀인
성경으로 제시하며 우리에게 도전한다.
기독교는 광야의 한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영원의 가치를 온몸으로 견뎌낸
소명의 삶의 역사다
깨달음에 머무는 종교의 명상과는 차별된다.
소명의 삶으로 부르심 받은 선조들의 기록이
성경이다.
성경은 기록과 더불어 보이는 세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분명하고
세심하게 설명한다.
동시에 진리를 밭에 감춰진 보물과 같이
숨겨놓았다.
몸부림치며 진리를 추구하는 자에게
보물의 빛이 향한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들은 언제나 소명의 삶을 치열하게 순종함으로 받아낸 무명의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에서 시작되었다.
보이는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은 욕망의 덩어리가
폭력과 억압을 동원하여 굴복시키더라도
꿋꿋하게 일어나 묵묵하게 기다리며
진리를 추구하여 자유를 얻고야 만다.
그것이 영성이다.
-도전-
보이는 세계, 욕망의 주인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사람들이
눈을 뜨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이미 눈을 뜬 사람들은 현실의 벽에 좌절해서
눈을 뜨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 보내려 애쓴다.
영성은 신비로운 체험과
기적을 추구하는 삶이 결코 아니다.
분명한 삶의 목적과 소명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보이지 않는 중에 있는 진리를 보이는 세계에
풀어내는 묵묵한 한걸음이다.
현실은 영성을 가다듬고 더욱더 성숙하도록
이끄는 도구이며 삶의 현장이다.
현실을 외면하면 영성을 가꿀 수 없으며
현실만의 가치에만 집중하면 영성의
가치를 잊게 된다.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키우는 여정을
성경의 인물들과 믿음의 선배들은
역사의 현장에서 풀어냈다.
벼랑 끝에서 삶의 의미를 갈구하며 영성에
눈을 뜨게되어 소명의 삶으로 가슴떨리는 발걸음을 옮기는 역사의 현장에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