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영목 Apr 05. 2019

조형의 형식과 의미

제6장 디자인조형창작_07


앞서 조형언어에 기호, 의미, 구조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기호(형식)와 의미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최근에 ‘디자인에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스토리텔링 디자인’ 등 디자인에 담긴 의미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형의 기호(형식)와 의미의 관계를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여러분이 여성이고 멋진 남성과 연애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그 남성은 여러분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그래서 만난 지 3년째 되는 날 여러분에게 반지를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 반지는 흠집도 너무나 많고 보잘것없어 누런 구리반지입니다. 그 반지를 받은 여러분은 어떨까요? 그런데 그 남자가 여러분에게      


“이 반지는 우리 5대 위의 할머니 때부터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반지야. 

우리 집의 어머니가 새로운 며느리에게 전하며 5대째 내려오고 있어. 그리고 그 반지를 처음 준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그 당시에는 모두 집안에서 정혼자를 정해주던 시기에 두 분이 처녀 총각 때 만나 서로 너무 사랑하셔서 집안의 반대와 주변의 시선을 무릎 쓰고 결혼을 하셨는데 집안에 일이 생겨 할아버지께서 중국으로 가실 수밖에 없었고 그때 정표로 주신 반지였데, 그리고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온갖 일을 겪으시고 30년 만에 돌아오셨는데 한순간도 할머니를 잊으신 적이 없었다고 해. 

그리고 할머니도 그 반지만을 바라보면 항상 간직하며 할아버지를 기다리셨고 결국 나이 먹어 두 분이 다시 만나셔서 두 분은 너무 행복하셨고 우리 집안의 후손들이 당신들처럼 서로 믿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반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로 하셨데. 이게 그 반지야.”     

라고 설명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처음에는 “이게 뭐야 다 낡은 반지를 어디서 주워 나에게 주는 건가?”하고 생각이 들었다가도 그 설명을 듣고 나면 감격이 파도처럼 몰려올 것입니다.      


다른 경우를 생각해봅니다. 어떤 남성을 만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남성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남성이 여러분에게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그 영롱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보면서 “아 이 남자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경우는 의미와 형식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낡은 구리반지는 형식은 보잘것이 없으나 그 반지에 담긴 의미가 매우 큽니다. 그래서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의미는 확실치 않으나 형식이 매우 큰 것입니다. 그래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무나도 당연히 의미와 형식이 클수록 감동이 커지겠지요. 

그리고 의미와 형식의 균형이 잘 맞는 것도 중요합니다.     


디자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려면 의미와 형식을 가능한 크게 그리고 잘 균형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생들이 작품을 하는 경우는 의미가 크나 형식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학기 내내 조사를 하고 콘셉트를 잡고 자신이 발견해낸 문제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공감하고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발견한 자신이 대견하고 자부심이 넘쳐 정작 디자인 결과물을 치밀하게 만들어 내는 과정에 소홀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한 것이 디자인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문제의 심각함과 그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깊이 함몰되어 그야말로 의미만을 키운 채 형식을 만드는 일에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디자인을 오래 하다 보면 의미보다 형식을 만들어내는 데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경우도 생깁니다. 아무리 의미를 정성껏 만들어 내도 클라이언트는 결과인 형식만을 평가하기에 의미보다는 멋진 형식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앞의 반지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반지의 의미를 열심히 설명하는 것이 말로만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후자의 다이아몬드 반지의 경우는 상황보다 너무나 형식이 지나쳐버리면 오히려 그 의도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나의 마음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이렇듯 형식이나 의미가 중요하기는 하나 그 둘의 균형이 잘 맞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자인에서 그 디자인에 담긴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결과로 표현된 형식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좋은 형식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의미와 그 좋은 의미를 충분히 담을 수 있는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형언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