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디자인창의력_13
나는 해보고 싶은 수업방식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수업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조명을 주제로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에게 다음 주까지 조명을 200장씩 그려와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200장을 그려오면 또다시 다음 주까지 200장을 그려 와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그려온 그림의 장수만 확인하고 수업을 마치면 30분 이내로 수업이 끝날 것입니다.
이렇게 몇 주를 하면 학생들은 무슨 수업이 이래 하면서 불만이 쌓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다 보면 처음과는 달리 그림의 장수도 쉽게 늘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밀어붙이면, 죽어라고 노력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마는 몇몇 학생은 저를 의심하고 과제를 충실히 하지 않던지, 아니면 아예 학교를 빠지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하여 강력히 학생들을 압박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개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어떤 학생은 그 순간이 300장에서 올 수도 있고, 어떤 학생은 600장에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는 위의 그림에서 가운데의 조명이라는 노드와 관련된 이미지를 스케치를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끊어 나가다가 더 이상 끊을 선(링크)이 없는 상태에 이른 것과 같습니다. 스케치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외재화(外在化)하는 것이기에 한번 그린 것을 두 번 다시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일종의 패닉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조명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침에 등굣길의 전철 손잡이도 조명으로 보이고, 길을 걸어가다가 보도블록도 조명으로 보이고, 심지어 밥을 먹을 때 수저도 조명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학생은 이와 같이 평소에는 생각하지도 않던 대상을 조명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미친 듯이 찾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이거 좋은 조명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그림에서 기존에는 연결되지 않았던 새로운 링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창의입니다. 창의는 새로운 링크이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가 될 때까지 학생들이 그렸던 수백 장의 그림은 그 학생이 이미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링크를 끊어내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링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링크를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즉, 그 단계에서 멋진 조명이 나오는 것은 새로운 창의가 아니라 적절한 답입니다.
창의는 기존에 있던 모든 링크를 끊어낸 이후에 새롭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학생에 따라 300장에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거나 600장에서 더 이상 그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그 학생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조명과 연계된 링크의 수의 차이입니다. 600장을 그려낸 학생은 당연히 300장을 그려낸 학생보다 조명과 연계된 링크가 많은 것입니다.
따라서 창의적 습관이라는 것은 아는 것을 버리는데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맞을 거야 하는 생각을 아끼지 말고 많이 하고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이 안 날 때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찾고 하여 마침내 자신도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낼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창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움을 모색하는 단계는 답답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진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멋진 답을 찾아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진정한 의미의 창의의 기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창의의 기쁨은 적절한 답을 제시하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느끼는 기쁨과는 다릅니다. 진정한 창의가 이루어졌느냐 아니냐는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