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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Aug 13. 2023

영국 결혼식에 없어서는 안 될 ”이것“

새벽녘이 되도록 이어지는 댄스, 댄스, 댄스

영국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 종종 우스갯소리로 삼는 결혼식에 대한 농담들이 있다.

“아버지들은 흥이 오르면 머리에 넥타이를 두르고 춤을 추기 시작하고, 아바(ABBA)의 음악에 맞춰 팔을 휘젓는 고모의 팔동작은 마치 수영선수 같아요! “


영국인들은 결혼식 때 지칠 때까지 밤새 춤을 춘다. 마치 춤을 추는 것이 이 기쁜 날을 축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신랑신부에 대한 최대의 찬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성혼 선언을 끝낸 신랑 신부가 댄스 플로어로 나오면, 하객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 이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시선을 집중한다. 영국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순간, 퍼스트 댄스(first dance)다. 기다란 웨딩드레스 자락을 끌며, 낭만적인 가수의 노랫소리에 맞춰 추는 둘만의 댄스를 모두들 숨죽이며 지켜본다. 쑥스러운 듯 씩 웃는 신랑과 신부가 댄스를 마치면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영국 결혼식장, 2023


퍼스트 댄스가 끝나고 나면 쇼타임이 시작된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디제이가 디스코를 튼다. 점잖은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들과 화려한 원피스 차림의 레이디들이 댄스 플로어로 나설 차례다. 평소엔 단단한 예의로 중무장을 하고 사람을 대하던 “보통의 영국인”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다양한 춤동작으로 댄스 플로어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다. 강렬한 마젠타색 롱드레스와 고상한 모자를 쓴 새침한 인상의 이웃집 여성이 90년대 디스코에 막춤을 추기 시작해도 허용되는 분위기다.


한국인들을 “흥의 민족”이라고들 하지만, 영국인들도 못지않게 어릴 때부터 춤에 익숙한 편이다. 학교마다 행사 때 댄스가 빠지지 않고, 아이들은 자연스레 춤을 배운다. 이는 영연방제도의 하나인 캐나다도 비슷한데, 낮에는 조용하던 학교 실내 운동장이 밤에는 조명이 번쩍이는 무도회장으로 변모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친지들의 테이블에 앉아 대화하며 무도회장을 관망만 하고 있던 나에게도 댄스 요청이 들어왔다. 평소 막대기같이 뻣뻣한 춤동작을 자랑하는 나였기에, 예의 바르게 몇 번 거절의 의사를 밝혔지만 소용없는 일일 뿐이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댄스를 요청한 존은 모든 결혼식에서 모두를 춤추게 만드는 것으로(?) 나름 이름이 높았다.


“저는 정말 춤을 못 추는데요.”

“춤을 못 추는 사람은 없어요. 그냥, 리드에 맞추기만 하면 돼요!”


조명이 빙빙 돌아가고 나도 빙빙 돌려지니 처음엔 세상이 노래졌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저마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정형화된 댄스 무브 같은 건 없었다. 그 모습들을 보자니 없던 용기가 샘솟았다. 어찌어찌 첫 번째 댄스를 마치고 테이블로 돌아가려는데 쉴 틈도 없이 댄스 파트너가 바뀌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영국에 왔으면 영국 법을 따라야 하는 법. 눈을 질끈 감고 막춤의 세계에 발을 딛는다.


영미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격언 중 이런 말이 있다. “춤춰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Dance like nobody's watching.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가끔은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흥겹게 춤을 추며 삶의 고삐를 느슨하게 하는 여유도 필요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Sunyoung Cho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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