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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Aug 20. 2023

캐나다 아침 커피의 추억

그 시절, 아침을 깨우던 커피 향의 기억들

유난히 서늘한 버스 정류장의 아침 공기. 10월인데도 불구하고 겨울이 다가왔음을 코 끝으로 느낄 수 있다. 겨울이 일 년의 반을 차지하는 이곳 답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어디선가 훅, 짙은 커피 향이 코를 자극했다.


“좋은 아침! 오늘은 좀 어때? 아, 너 그 반짝이는 아이섀도 예쁘다. “


학교에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는 R 군. 유럽인 이민자와 캐나다 원주민 혈통이 섞인 짙은 눈매가 어딘지 ”캐리비언의 해적“을 연상케 했다. 다크 브라운 색의 어깨까지 오는 구불거리는 머리와 마른 손목에 차고 다니는 알록달록한 히피 느낌의 팔찌들이 더해지면 영락없는 거리의 악사랄까. 자유로운 영혼임을 온몸으로 부르짖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늘 살갑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11학년 수학 수업 때 처음 만난 녀석은 나에게 연필을 빌려간 인연으로 친구가 되었다. 정체불명의 향수와 커피 냄새가 짙게 밴 터에 십 리 밖에서도 녀석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드티와 청바지의 평범한 차림 일색이던 학교 내에서 녀석의 치렁치렁한 옷차림은 눈에 띄었다. 가뜩이나 튀는 걸 극도로 싫어하던 나와 유난히 튀던 그 녀석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코스타 커피의 라떼, 2023


그의 손에는 늘 커다란 텀블러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갓 커피 메이커에서 내린 커피 향이 진하게 났다. 커피 메이커 커피 냄새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아침마다 내 구닥다리 노키아 핸드폰에서 나는 알람소리처럼 익숙한 것이 부엌의 커피 메이커가 만들어내 쪼르륵, 떨어지는 커피 향이었기 때문이다. 카페의 근사한 에스프레소 머신이 만드는 커피보다 풍미는 떨어져도,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의 아침잠을 깨우기에는 충분한.


2층 내 방의 좁다란 나무 침대와 이불 사이로 스며드는 커피 메이커가 만들어내는 짙은 커피 향이 잠을 깨우곤 했다. 겨울이 다가오면 난데없는 캐나다 거위 떼의 요란한 울음소리로 때 이른 아침잠을 설쳤던 적도 있는 것 같지만.


여튼간에, 캐나다인들의 아침 원두커피 사랑은 유난스러운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 출근길에 직장인들 손에, 차 컵홀더에 꽂혀 있던 큼지막하고 투박한 텀블러들도 말이다. 내가 떠나오기 직전 한국은 지금 같은 카페 문화가 정착하기 전이었으니까.


어린 시절의 나에게 커피의 동의어는 맥심 모카골드였다. 말도 안 되게 달고 쓴 이 인스턴트커피를, 한국의 어른들은 간장종지만 한 커피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훅 마셔버리곤 했다. 그런데 캐나다에선 너나 할 것 없이 거대한 커피 메이커에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대고 있었다. 동양의 고요한 나라에서 갓 건너온 소녀가 맞닥뜨린, 하루아침에 일어난 커피의 대변화.


어느 평범한 여름날, 엘리베이터에서 후다닥 내리는 어느 여인의 손에 들린 텀블러의 짙은 커피 냄새. 기억 저 편에 잠들어 있던 머나먼 추운 도시와 버스 정류장의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프루스트 효과(the Proust effect)”라 했던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어느 프랑스 소설처럼 말이다. 추억의 향은 그토록,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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