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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Jan 18. 2024

홍콩에서 영국을 맛보다

민스파이(Mince Pies)


*작가의 근황: 제 여행 에세이집 <<영국은 맛있다>> 초판 작업 중입니다. 곧 교보문고와 예스 24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크리스마스 무렵엔 홍콩을 다녀왔다. 그렇지 않아도 화려한 홍콩의 번화가에 울긋불긋한 전등들이 아름다웠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에스컬레이터와 빛바랜 붉은 간판들. 낡은 캠코더로 담아야 멋지게 어울릴 것 같은. 홍콩은 어딘가 그리운 냄새를 담고 있었다.


구룡반도 네이선 로드의 영국 체인 슈퍼마켓, 막스 앤 스펜서에 들어서니 요란한 크리스마스 점퍼(영국에선 스웨터를 점퍼라 부른다)가 손님들을 맞이한다. 음식 코너엔 크리스마스 푸드들이 즐비하다. 진열대를 완전히 점령해 버린 민스파이 박스들이 눈에 띄었다.


호주와 같은 영연방 국가에선 다진 고기 파이로 더 친숙하지만 영국에선 말린 과일을 넣은 엄연한 “디저트”다. 엄지손가락 반마디만 한 아기자기한 크기. 바삭하면서도 버터리한 질감과 향긋한 계피와 향신료 냄새가 달콤한 민스 미트(건과일)와 어울려 먹음직스럽다.


북미에선 어린아이들이 쿠키와 우유를 두고 산타를 기다리는데, 이의 영국 버전이 바로 민스파이와 셰리주다. 아이들은 민스파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달콤쌉살한 말린 과일과 육두구에선 어른의 맛이 나기 때문일까.


홍콩 슈퍼마켓에서 발견한 민스 파이, 2023



지금, 나는 홍콩 네이선 로드에 서 있다. 복잡한 대로에선 더블 데커(2층 버스)와 레드 캡이 유유히 사람을 실어 나른다. 뒤를 바짝 걸어오는 커플의 광둥어가 어지러운 도시의 배경음에 녹아든다.


홍콩은 그런 곳이다. 번화가의 딤섬 식당에서 한 끼니를 해결하고, 영국계 슈퍼마켓에서 파는 민스파이로 후식을 해결할 수 있는.


여태껏 공존하는 두 나라. 마치 왕가위 영화의 금발 마약 밀매상과 그녀 옆에 앉아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경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남녀처럼. 실제로 중경삼림은 홍콩 반환을 앞둔 1994년 당시 사회의 불안감을 녹여낸 영화라 했다.


이 공존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구룡반도(九龍半島)의 네이선 로드(Nathan Road)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이름의 번화가를 걸으며, 여행자는 생각에 잠긴다.





[작가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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