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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Sep 02. 2024

한국을 떠나던 날

소녀와 이민 가방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빨간 단풍이 그려진 캐나다 비행기를 타 본 것은.


무려 2개의 거대한 이민 가방을 짊어지고, 나는 막 상공을 날아오르려 하고 있다. 이민 가방엔 캐나다의 추위를 대비한 두꺼운 옷들과,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에게 나눠줄 요량으로 하나 둘 사모은 한국의 아기자기한 귀걸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한국 음식들이 바리바리 싸여 있었다. 모두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나갈 딸을 위해 준비한 엄마의 선물이었다.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이. 다행히 그 빨간 단풍의 캐나다 국적기는 어린아이들의 나 홀로 비행을 돕는 서비스가 있어서, 미성년자 아이들을 부모 없이도 무사히 캐나다로 옮겨 실어 날라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주었다.


고만고만한 나잇대의 아이들이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옆에 서 있는 열댓 살의 꼬마와 그 몸집보다 큰 첼로 케이스를 보며, 저 첼로도 우리처럼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걸까, 사람처럼 비행기 좌석에 실려 갈려나? 나는 잠시 생각했다.


"네 핸드백 정말 멋지구나! “


미처 부치지 못한 검은 캐리어 가방은 오버헤드 위에, 손때 묻은 가죽 가방을 짊어지고 이코노미 좌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녀에게 상냥한 금발머리 중년의 승무원이 칭찬을 건넸다. 이거, 동대문에서 우리 엄마가 사준 거예요. 멋지죠?라고 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아직 서툰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이다.


아직 스마트폰도, 기내 좌석마다 개인용 모니터도 없던 시절. 갤리 앞 승객석에 드리워진 스크린에는 영화 엑스맨이 상영되고 있었다. 한글 자막 없이 본 최초의 영화. 아, 꼼짝없이 열 시간 여를 알아듣지 못할 영화를 보며 자리에 붙박여 있어야 할 신세였다. 읽을 책도, 개인 모니터 따위도 없는 상황.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뿐. 저 검붉은 헬멧을 쓴 날아다니는 백인 할아버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난 걸까? 가만 보아하니, 저 수염 난 늑대같은 아저씨가 할아버지를 화나게 한 게 분명해…


그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점철된 영화를 수차례 반복하며, 자다 깨다를 몇 차례. 비행기는 마침내 태평양을 넘어 미지의 땅, 밴쿠버에 무사히 착륙했다.


처음 만난 가을의 밴쿠버는 온통 눈부신 하늘색으로 가득했다. 승무원의 가이드에 따라, 전동 카트를 타고 밴쿠버 공항을 누비는 것은 부모 없이 떨어져 나온 아이들의 신나는 특권이었다. 키가 올망졸망한 한국 어린아이 틈바구에 낀, 키가 훌쩍 큰 나. 그 오합지졸같은 아이들 군단을 가득 실은 전동 카트는 공항 안을 씽씽 달렸다. 갓을 쓴 원주민과 동물들이 가득한 공항 내 거대한 조각상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그 조각상에 새겨진 표정 없는 초록색의 커다란 얼굴, 나는 좀 무서워했던 것도 같다. 얼핏 우리나라 장승같지만, 정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그런 얼굴. 그렇지만 좁은 기내에서 마침내 벗어난 해방감에 가득찬 지금, 밝은 햇빛이 창문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이국의 공항에서그런 것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흡사 디즈니랜드라도 온 것 같았으니까. 마음이 간질간질하니, 눈 앞에 새롭게 펼쳐진 세상에 그저 신날 뿐.


“너 어느 학교를 가게 되니?”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환승 비행기에서 옆자리 부부가 던진 질문이었다. 멋지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발음은 도무지 마음먹은 대로 나오질 않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다시금 얼굴을 붉히며 학교 이름이 적힌 메모 쪽지를 내밀었다. 마음씨 좋은 캐나다 부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행운을 빌어!라고 말해주었던 것 같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그날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지는 어둑한 인천 상공을 바라보며, 나의 부모님은 한적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홀로 딸을 낯선 나라로 떠나보내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인스타그램 : @sunyoung_choi_writer


영국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여행을 담은
푸드 에세이,
"영국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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