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아남기
노이부르크 성곽 안에 위치한 400년 된 텅 빈 집을 씽크대 설치부터 가구를 다 채우고 산지 6개월만에 거의 쫓겨나다시피 되었다. 이 곳의 집주인인 시청의 주거관리자에게 눈물나는 장문의 편지를 여러번 보내고 받은 답장은 겨우 30일 연장뿐이였다.
미친듯이 집을 알아봤지만 독일에서 외국인이 집구하기는 하늘에서 별따기다. 부동산, 인터넷, SNS, 전단지 모든 수단을 이용했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는 더군다나 더욱 어려웠다.
내가 사는 도시는 인구가 3만명에 한국인-독일인 1가정밖에 없다보니( 6개월후에 먼거리에 3가정 더발견!) 있어서 시내에서 우리가 지나가면 원숭이 보듯 구경하는 눈길도 많고 몇몇 청소년들은 중국말, 일본말하며 인종차별 언행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동차가 없으므로 새로 구하는 집은 자전거로 학교에 등하교가 가능해야하고 슈퍼에 걸어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집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빈 집 채우고 다시 비우는 건 너무 힘든일이라 큰 살림은 갖추어진 곳이어야 한다. 여름에만 여는 여름별장도 다 공략하며 깨끗이 쓰겠다고 설득했지만 헛수고였다.
그 와중에, 두 곳은 내가 거절한 곳이 있기도 하다. 이렇게 집구하기 힘든때에 배부른 태도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임대 광고 중에 한 곳을 찾아갔는데, 궁전같은 부잣집의 지하였다.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 한듯하나 지하방은 중세시대때 그대로인 것 같았다. 분위기가 아주 침울했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미로같은 구조에 두 자녀의 싱글대디와 그의 여동생이 자녀 한 명이 위층에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많아서 같이 놀면서 지낼수도 있고, 큰 집이라 좋긴 하지만 우울한 분위기의 지하는 우리의 삶이 우울해 질 것만 같아서 싫었다. 학교가 너무 멀어서 안될 것 같다고 말하고 나오려는데, 월세를 더 깎아준다고 하고, 학교는 아이들 차로 데려다줄때 같이 가면되니 걱정말라고 한다. 이런 호의는 처음이지만, 그래서 더 거절했다. 내 느낌이 맞는 선택일 때도 있고 틀릴때도 있지만, 난 내 촉을 믿고 따르는 편이다.
또 다른 한 곳은 노이부르크 시내에 375년된 수도원- 연구센터, 방과후 돌봄센터 등으로 운영되고 있음 안에 있는 기숙사다. 우연히 건너 건너 들은 소식으로 (주변에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애써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빈 자리가 있다고 하니 연락하고 방문해보라고 했다. 약속을 잡고, 아이와 같이 갔다. 입구를 찾느라 한참 걸렸고, 그때까지도 도대체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안내 해 주시는 분께서 특별히 지인찬스로 가능했다고 말씀하시며, 1인실이지만 아이와 함께 지내는 걸 허락한다고 하셨다. 공동주방, 방과후 교실, 야외 놀이공간, 고등학생들이 만든 야외 수업공간, 텃밭, 신부님들께서 거처하시고 고해성사를 받으시던 건물이 유치원으로 리모델링되고 있는 공사장 등 모든 시설들과 역사를 설명 해 주시고는 드디어 1인실 방을 보여주었다. 방에는 싱글침대 1개, 책상, 의자 1개, 옷장 1개, 책장 1개, 작은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었다. 베를린에서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할때도 작은방에서 둘이 살아봤기에 뭐, 괜찮을 것 같았다. 매트리스를 추가로 하나 더 넣어도 되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셨으나 문제는 그것을 놓을만한 여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뭐 그쯤이야,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면 나올거다 생각하고 돌아서 나왔다. 나에겐 지금 다른 선택권이 없지 않은가? 이것도 특별혜택으로 신경 써 준건데, 보증도 없는 외국인을 그것도 아이까지 받아준다는 건 눈물나도록 고마운 기회였다.
강민이는 우리가 집이 아닌 학교 같은 곳에서 살아야하느냐고 이해하지 못했다. 8살에게는 모든게 낯설고 이상했겠지.. 공동주방에서 정해진 식사시간에만 먹어야하고, 출입이 가능한 시간제한이 있으며 크게 떠들거나 뛰어다녀서도 안된다. 1주일의 생각 할 시간을 달라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심장이 쪼여지고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지금의 집에서는 나가야하는데 이사갈 곳은 없고, 1주일을 더 알아보고 찾지 못하면 수도원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이번에는 에어비앤비를 검색했다. 6개월 전에 찾아볼때 에어비앤비에 아무것도 뜨지 않았기에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에어비앤비는 있을리가 없지..
그런데 열어보니 딱 한 군데 있다! 위치도 시내다! 당장 연락하고 찾아가보았다. 마당도 있고, 젊은 주인은 3층에 살고 1층엔 아우디공장에 다니는 폴란드인들이 장기거주하고 있고, 2층을 빌려준단다. 긴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장기계약에 동의 해 주었다. 아무래도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니 긴 시간의 면담으로 파악한 후에 세입자를 결정하는 방식인것 같았다. 에어비앤비다보니 모든 가구와 살림이 갖추어져있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따로 등록하지 않아도 되고 인터넷까지도 월세에 포함되어 있어서 이것도 좋다. 완벽해! 너무 좋아!
자, 이제부터는 현재 집의 큰 살림들을 모두 처분해야했다. 신기하게도 가장 어려울 것 같았던 싱크대를 뜯어가기로 한 사람이 가장 먼저왔다. 중고거래는 ebaykleinanzeige.com이라는 곳과 Facebook을 이용하라는 윗층에 사는 친절한 싱글맘 Eva의 도움이 컸다. Eva는 우리집에서 신호가 잡히는 본인집의 무선인터넷도 사용하라고 배려해준 좋은 이웃이다. Eva와의 이웃 인연은 우연하게 연결됐다.
이 집으로 이사한지 일주일되는 날에, 나는 만두를 구워서 강민이와 이웃 몇집을 방문하며 인사했다. 그냥 내방식대로 한국방식대로 행동한건데 모두들 놀라고 감동했었다. Eva네 집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문앞에 접시를 두고 가려는데 안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보니, Eva가 쓰러져 있었다. 놀라서 911을 불렀고, 병원으로 실려간 Eva는 급성맹장이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서로 도움도 주고 시간이 맞을 때 가끔 차도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이상해도 인종이 달라도 이웃은 좋은 것이다.
드디어, 공적인 일은 냉정하고, 사적인 일은 굉장히 배려심 많은 Josef(요세프) 의 에어비앤비로 들어가는 날이다. 도착하니 2층이 아니라 1층으로 가란다. 왜요? 아이와 함께 지내는데 2층이 불편할 것같아서 폴란드인들에게 혹시 양보해 줄 수 있는지 물었고, 그들이 흔쾌히 승낙해서 우리는 1층을 쓸 수 있게 된 것이였다. 쫓겨나다시피한 집에서 온 길이였는데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방 세 개, 화장실 한 개, 거실겸 주방이 구조다. 우리는 방 두개만 써도 된다고 하니, Josef는 그럼 쉐어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만약 장기거주자라면 같이 인터뷰를 보고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월세도 아낄겸, 쉐어하기로 하고 했다. 불편하게, 위험하게 왜 그랬냐는 말들이 많았지만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다.
하루, 이틀을 예약하고 오는 사람들은 주로 박람회나 워크샵에 참석하는 다른 지역에 사는 독일인이였다. 저녁에 잠시 만나 이야기 나누는데도 모두가 다르고 다들 자신의 인생가치관이 확고했다.
한 남자는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라고 강조했다.
자신은 젊은 시절 일과 성공을 쫓다보니 아이들과 멀어졌고, 결국엔 어린 아이들과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 살아보니 인생은 사랑이 전부인 것 같다고 했다. 눈을 마주보고 칭찬하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피부를 부비고,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오버하는 것 같아도 지나칠만큼 아이들을 사랑해주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한참 육아에, 공부에, 살림에, 낮선외국생활에 힘들어서 놓치고 있던, 아니 잠시 저만치에 살짝 덮어두었던 마음을 건드린 때였고, 반성하고 다시 나의 그 마음을 꺼내올 수 있었다.
이렇게 독일에서 하늘의 별인 집을 땄다!
앞으로 우리가 이 집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