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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하고 깊은 May 08. 2024

아스퍼거 여자 이야기 (1)

자폐 스펙트럼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나는 스스로 일찍 한글을 땠다.

세살 터울의 오빠가 한글공부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는 혼자 깨친 모양이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읽기 독립을 한 나는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을 둥그렇게 둘러앉혀놓고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엄마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그렇게 시작된 나와 책의 인연은

40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쭉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책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나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나를 전혀 긴장시키지 않는

그래서 언제든 먼저 다가가게 되는

편안한 친구.


표정이나 제스쳐가 없이

순수한 글자만으로 나에게 다가오기에

상대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미묘한 표정 속에 숨은 속뜻이 뭔지 고민할 필요 없는

그래서 나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 친구.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그리고 설령 내가 친구의 말 뜻을 오해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친구.

나는 그런 책이 참 좋다.


밖에 나갈 때면 요즘 읽고있는 책을 가방에 넣어서 나간다.

설령 읽지 못하더라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해서 들고 다니는 것이다. 언제든 짬이 나면 꺼내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안도감을 준다.


그리고 가끔 콧바람을 쐬고 싶어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나는 근처 서점에 들르곤 한다. 거기서 우연히 마주치는 책과의 새로운 만남은 늘 나에게 설레임을 준다.


물론 내게도 사회적인 친밀감의 욕구가 없지는 않다.

오랫만에 연락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치만 그 사람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나와 맞지 않는 성격들이 떠오르고 괜시리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꼭 만나서 밥을 먹고 까페를 가고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피곤해질 필요가 있을까.

내가 요즘 진짜 관심있는 이야기들을 과연 관심있어할까. 이런저런 생각들 끝에 내 발길은

결국 서점으로 향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어린시절부터

친구를 사귀는 일이 너무나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였던것 같다.

같은 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나와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알아차리기 어려웠고

내 이야기를 친구들이 관심있어하지 않았던것 같다.

그 전까지는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투명하게 표현했던것 같은데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는

도통 아이들의 속을 모르겠고 어딘지 모르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슬 나를 제외한 아이들이

무리를 짓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무리들 속에서 저절로 외톨이가 되어있었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6학년은

가장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그 이유는 한 남자 아이 때문이다.

사립학교에서 퇴학을 당해 이 곳으로 전학왔다는 그 아이는

중학생 같은 발육상태에 얼굴이 상당히 잘 생기고 귀티가 나는 아이였다.

속칭 날라리였다.

성에 일찍 눈을 떠서 사고를 친듯 했다.

우리 반에 전학을 와서 예쁘장한 여자아이들에게 하나씩 대시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적극적이고 무모해서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어느새 내 순서가 되어있었다.

언젠가부터 특별실로 이동하는 길목에 그 아이가 친구들과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싫다고 화를 내지도 못하고 뭐하는거냐고 째려보지도 못한채 그저 당황해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 아이의 돌발행동은 언제나 관중들을 필요로 했고 나는 어느새 5~6학년 여자아이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있었다.


그저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던 내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아이의 무차별 기습 고백과

여자아이들의 날보는 똥씹은 표정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학교에 가기 싫었고 외로웠다.

누구에게 뭐라고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몰라

그저 막막하고 불안했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지독히도 불안하고 처절히도 외롭게 흘러갔다.


아니,  난 그 당시 사춘기가 아니었다.

나는 또래들보다 사회성 발달이 늦었기에

나는 사춘기는 중학교에 가서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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