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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Mar 03. 2021

우울 안의 개구리

개강 첫날의 사색

1년의 휴학 끝에 복학을 했다.

지난 학기엔 학교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 중도 휴학을 하기도 했고, 나의 우울증은 학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업 듣고 공부하기를 유난히 힘들어했던 내가 드디어 복학을 결정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개강이 긴장될 만도 한데 나는 이상하리만큼 별 생각이 없었다. 실제 수업을 들으면서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개강을 했다는 자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친구는 개강이 싫어 새벽 다섯 시까지 울다가 잠들었다는데 그에 비해 나는 너무 멀쩡해서 오히려 마음이 울렁거리며 이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개강 후기를 듣고자 여러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반응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예상대로 개강이 너무 싫다고 한 친구도 있었고, 나처럼 아직은 별 생각이 없다고 한 친구도 있었고, 인턴을 하다가 복학을 한 한 친구는 학교 다니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여러 의견을 수합한 결과,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사실 개강으로 힘들어하지 않는 것은 내가 그만큼  좋은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러한 상태를 계속 신경쓰고 오히려 불안해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이 상태가 계속되어 힘들이지 않고 학기를 잘 마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동안 해왔던 중도 휴학들을 생각하면 꼭 그래야만 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내 병의 완치 기준을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는 것에 두고 있었고, 이에 마음이 조급해졌던 것 같다. 아직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자 아직 우울증이라는 울타리 속에 존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우울증이라는 껍데기 속에 살아와서 나를 드러내고 속살을 내비치는 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만큼 두려웠다.

우울증에서 벗어난 나는 예전에 그랬듯이 뭐든지 잘 해내야 할 것만 같고 완벽해야 할 것만 같다. 이젠 실수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우울증에 걸려서 기억력이 떨어진 거야', '우울증에 걸려서 사람 만나기가 싫은 거야', '우울증에 걸려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는 거야' 등의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무서웠다. 벌거 벗겨진 채로 절벽 끝에 홀로 서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병에서 벗어나면 좋은 건데 왜 자꾸 다시 아프려 하냐며.

하지만 병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 같다. 완벽주의자들에게는 자신이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과정이며, 아픔으로써 관심을 받고자 하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하던 한 가지를 내려놓는 것이며, 우울증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있던 사람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연습을 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이 모두에 해당된다.

우울증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게 치료의 첫걸음이라면 내겐 완치에 대한 불안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이 우울증이라는 껍데기를 탈피하는 첫걸음인 것 같다. 내가 나의 병을 세상에 내비치기 전에 사람들이 이로 인해 나를 배척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려 노력했던 것처럼, 이 한 고비를 넘기려면 내가 우울증에서 벗어나더라도 실수해도 되고 실패해도 된다는 사실을 되네여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우울 속에 잠식된 우울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충분히 쉬다가 때가 되면 다시 우물 밖으로 나와 더 넓은 세상을 힘껏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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