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답을 꼭 찾지 않아도 되는 까닭
나는 내가 미래에 대한 목표가 있고 꿈이 있으며 인간관계가 좋고, 날 사랑해주는 애인이 있고, 일상생활을 잘 영위해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인생을 잘 사는 거라고, 또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우울증과도 먼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를 이루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임상심리전문가라는 꿈을 찾았고, 가깝게는 온라인 전시회 개최하기, 멀게는 북카페 차리기 등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웠으며, 친구들, 가족들 및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잘 맺으려 노력했고, 학교 공부에도 최선을 다했다. 실제로 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정리하기 위해서 우울증 에세이도 썼고, 우울증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나를 나타내기 위해 그림 전시회도 열었다. 나를 증명하고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나에 대한 문제들을 드러내고 털어내면 모두 해결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나의 문제들에 대해 꾸준히 글을 썼고 면담치료를 받았으며 해답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실제로 몇몇 문제들은 해답을 찾아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로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우울증을 다 이겨댔다고 스스로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 삽화는 다시 나를 덮쳤다. 절망스러웠다. 지금까지 행해온 모든 노력들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힘들어지자 머릿속에는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들만 떠오르게 되었다. 죽음을 선택할만한 이유들은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었지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못했다. 그제야 삶의 이유를 다급하게 찾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혹여나 찾더라도 죽음의 이유를 이기지 못했고 결국 큰 효과를 낳지 못했다.
내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의 이유를 명확하게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생명이 소중함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아지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죽고 싶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 따르면 살아가야 할 이유 같은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매일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남겼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마음이 괜찮을 땐 삶의 이유를 찾지 않아도 그런대로 잘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삶의 이유를 떠올리지 않아도 흐르는 대로 살아가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힘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느냐, 살아가는 이유가 있느냐, '나'를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하느냐 등 질문에 달려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이는 우리가 조절 불가한 그날그날의 '기분 상태'에 달려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살아갈 수 있는 이유와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는 우리에게 살아가는 원동력과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이러한 목표들에대해 무기력햐지는 시점을 만나기도 한다. 우울증은 사실 너무 고약한 병이어서 우리의 노력을 다 허투루 만들 정도로 강력한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힘든 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힘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러니 답을 찾으려 자책하기보다는 힘을 빼고 이 시간이 지나기를 잠잠 코 기다려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