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 기도하며 지냈다. 기도는 종류가 여러 가지다. 보살은 매일 새벽과 밤마다 법당서 기도하는 것은 물론, 7일 기도, 21일 기도, 100일 기도, 1000일 기도, 이렇듯 기간을 정해놓고 할 때도 있다. 지난 보름간 기도는 기간을 정하고 한 건 아니고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쓰자는 주의였다. 딱히 음식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냥 했다. 만사가 힘들었다. 한 번씩 그럴 때가 온다. 다 꼴 보기 싫을 때 말이다. 그때는 글도, 사람도, 신도, 나 자신도, 다 내 뜻대로 안 되어서 한 번 훅 털어봐야 한다. 묵은 때 먹은 이불을 털어내듯 나 자신을 팍팍 털어보면 버릴 것, 가져갈 것이 나눠진다. 그러려고 다 놓고 기도만 했다. 장장 보름 만에 글을 올리는데 그건 기도가 잘 됐다는 말이다.
설하 언니가 도움을 많이 줬다. 머리 뚜껑이 열려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싶을 때 언니가 제동을 걸었다. 너 요즘 너무 달렸어, 너무 많은 걸 했어, 싹 놓고 당분간 기도만 해봐, 그런 식으로. 언니는 늘 공감과 해결책을 동시에 준다. 언니가 무당이라 그렇겠지만 분야 최고인 건 틀림없다. 나는 하는 일을 멈추거나, 잠깐 쉬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해서 언니 옆에서 기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니가 없었으면 죽었을 거란 말을 자주 하는 건 과장이 아니다. 나는 엔진이 갈리는 줄도 모르고 달리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 터져 죽었을 걸 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게 잘못됐다는 걸 안 지는 얼마 안 됐다.
기도하는 내내 이러쿵저러쿵, 뒤죽박죽, 우당탕탕, 울고, 짜증 내고, 화내고, 결국은 이 모든 게 인간 번뇌라 아무것도 아닐지니…, 인간 마음에 사로잡혀 눈물도 나고, 화도 나는 것이 무슨 보살이냐 그러면서 잘 끝냈다. 고작 보름 기도한 거 가지고 다 됐다면 코웃음 칠 일이지만 인간 번뇌에 사로잡히면 괴로운 게 내 삶이라는 거 다시 배웠다. 마음에 더 진하게 새길 수 있었다. 사람도, 인생도, 돈도, 아무튼 뭐도, 그거 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고작 물질에 그치지 않는 무엇일지니 신을 섬기는 제자 된 나는 물질 이상의 가치를 항상 겨냥해야만 한다고, 이 사실이 너무 기가 막혀서 돌아버릴 것 같지만 나는 그래도 해내고 만다고, 업을 잘 닦아서 다음 생에 태어나면 대통령이나 시켜달라고 결판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시험만 보면 전 과목 백점 받았을 때, 도청에서 영재라며 데려갈 때, 쟤네 언니도 모의고사 전국 100위권 안이던데 동생도 공부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했을 때, 나는 그때 꿈이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 무렵 신문에 강금실 장관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렸는데 가족 중 누군가가 윤우는 나중에 자라면 장관이나 하라고, 등을 토닥여주면서 했던 말 때문이었다. 그게 뭘 하는지도, 무슨 권한이 있는지도 다 모르면서 내 손으로 적어내면 누구든 그럴싸하게 봐줄 걸 아니까 그랬을 것이다.
영리한 이미지를 타자에게 삽입하는 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그 재주가 가끔 내 눈도 가려서 필요 이상으로 나를 똑똑하게 여기고, 자만에도 빠뜨리고, 남에게 상처도 주고 그랬을 것이다. 근데 이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죽을 때까지 내 눈 가리는 일, 자신을 속이는 일, 혹은 과대평가하는 일은 못 하잖은가. 그런 걸 안 해야, 단 한순간도 부끄럽지 않아야 다른 사람 인생에 개입하는 일, 즉 점을 칠 수 있다. 그게 바로 제자다.
이 지긋지긋하고 하기 싫어 죽겠는 일이 왜 내게 왔을까, 내가 왜 제자가 됐을까, 이 머리로 밖에 나가 돈만 벌어보라면 잘만 벌겠는데 왜 그러지도 못하고 매 순간 공명정대해야 할까,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을까, 보름간 법당에 앉아 염병을 떨다가 그만하기로 했다. 신이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면 가면 신이겠는가. 사실 신이 왜 온 지는, 내 소명이 무엇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제자 하는 거 너무 힘드니까 신한테 대들었던 거 같다. 이거 왜 이러냐고, 하기 싫다고, 내가 대체 어디까지 해야 하냐고, 근데 조금 더 하면 할아버지가 손발 다 묶고 아무것도 못 하게 앞길 막아버릴 것 같아서 관둔다. 오늘 이 반성문을 시작으로 짱짱하게 달려보려고 쓴다. 나는 제자 해도 일등 할 거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