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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Apr 20. 2024

나는 예술학도가 싫어요.(1)

 *이번 글은 제게 왔던 손님 y에 관한 글입니다. 이번 시리즈는 편지글로 시작합니다.


 y, y는 예술대에 재학하잖아요. 나는 y가 내게 손님으로 오기 전에, y가 SNS로 나를 유심히 지켜볼 때, 그걸 알고 나도 y를 지켜보기 시작할 때, y가 예술대에 재학하는 학생이란 걸 알았어요. 이윽고 y는 내게 손님으로 왔는데요. 거리가 멀어 전화 상담을 희망한다던 y에게 눈, 코, 입이 다 나온 정면 사진과 생년, 월, 일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때 y의 얼굴을 처음 봤어요. y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었어요. 나는 y가 왠지 아파 보일 것 같았는데 전혀. y는 강하고, 솔직하고, 앞뒤가 같은 인간, 그러니까 나 같은 인간이었어요. 나는 y를 보자마자 y 뒤를 지키는 할아버지를 먼저 봤고요.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잘 알아요. 인생이 한없이 고꾸라지는 사람,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닌 사람,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 육신과 정신의 고통이 이유 모르게 계속되는 사람. 나는 당신 같은 사람에게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요. 그건 나도 당신과 비슷하게 아플 때, 아무도 내게 친절하지 않을 때, 미미가 내게 해준 말인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살고 싶어졌거든요. 나는 y가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y에게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고생했다, 앞으로는 같이 고생하자 – 같은 말을 자주 하는 거예요. 우리 같은 종에게 저런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나는 잘 알거든요.


 y의 팔자는 조금 이상해요. 그건 y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에요. 인생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야매로 사주 공부를 해봤다는 y, 공부하고 보니까 진짜 내 팔자는 이상한 것 같다는 y, 당신은 태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살아지는 게 이상하다는 y, 그 말들은 내가 신을 받기 전에 했던 말들과 유사요. 나는 태어난 것만으로 죄받는 느낌이라고 그랬거든요. 아무튼 뭐… 이런 우울에 휩싸인 얘기 말고, 나는 y가 정말 유명해지길 바라서, 혹은 돈을 많이 벌길 바라서 이런 걸 써요. 나는 이게 일종의 기도라고 생각해요. y가 내게 그랬잖아요. 어느 집 부모들은 자식들 태어날 날까지 받아 준다던데 내 팔자는 왜 이런가 싶다고. y의 부모가 y의 날을 받아 주지 않았고, 간혹 무당을 찾아가 당신 인생 잘 풀리게 해 달라 굿을 한 대도 나아지는 게 없어 네 팔자는 굿 해도 나아지는 게 없냐며 원망 듣고, 그렇다면 내가 y가 진심으로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주려고요. 기도는 누군가 맑고 깨끗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요점인데 내내 그 마음으로 글 쓴다면 기도와 다를 바 없을 것 같아서요.


 사람이 지랄 같잖아요. 욕해서 미안한데… 나는 정말 사람이 지랄 같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에는 나도 있고, 당신도 있고요. 사람이 지랄 같다는 말은 우선 당신 편을 들고자 하는 말이에요. 당신은 사람에게 너무 상처받은 사람이니까. 말 안 듣고, 속 썩이는 것들이 잘 꼬이고, 따라다니는 수호신 할아버지가 힘이 좋아 당신도 모르게 사람 본성을 봐 버리고, 일찍이 상대 본성을 봤으니 그와 대화해 보기도 전에 기분이 나쁘고, 그 탓에 표정이 굳고, 굳은 표정으로 대화하니 남은 당신이 왜 그러나 싶을 거고,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암묵적 사실이 팽팽히 존재하는 대화를 많이 할 거고… 이거 맞죠?. 이건 사람을 잘 보는 당신 탓일까요, 아니면 본성 나쁘게 태어난 사람들 탓일까요. 나는 그 답을 알거든요. 그래서 말해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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