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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Apr 26. 2024

나는 예술학도가 싫어요.(마지막)

*y는 제게 왕래하는 손님입니다. y의 허락을 구해 실화를 바탕으로 씁니다.


 이제 조금 더 용기 내 본다. y가 절연한 아빠와도 연락하게 됐다는데 내가 무엇을 망설이랴. 오늘 나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마음 먹고 쓰는 글이다. 앞으로도 쓸 일 없을 것이다.


 나는 사상을 믿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퀄리즘, 무슨 주의니 뭐니 하는 것들. 나는 사상이 사람을 지운다고 믿는다. 그래서 믿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믿으면 자본을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다칠 수 있고, 사회주의를 믿으면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지나칠 수 있고, 페미니즘을 믿으면, 이퀄리즘을 믿으면, 뭘 믿으면, 지워지는 것들이 있다. 반드시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상과 주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제자라는 사실이다. 무언가를 믿는 것만으로 대적해야 할 집단이 생긴다면 거긴 제자가 있을 곳이 아니다. 제자는 만 중생을 보살필 의무가 있다.


 나는 y가 믿는 사상을 대충 안다. 나는 y가 사상 밖의 것들을 믿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살다 살다 이런 문장을 다 적어 본다. 나는 누가 어떤 종교를 갖든, 사상을 갖든, 어떤 사회를 꿈꾸든 다 모르겠고 인간답게 사는 게 우선이라 믿는다. 누가 무엇을 믿든 간섭지 않는 게 내 의무였고 그것에 충실했다. 그러나 y에게 간섭해보고 싶어졌다. 사상, 주의 같은 데 빠지지 말라고, 사람은 무언가를 믿기 시작하면 그것을 중심으로 세상이 회전하는데 너는 그러면 안 된다고, 너는 편향된 작품을 만들지 않을 의무가 있고 어느 한쪽에 치우친 작품을 다루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왜냐고. y는 제대로 상처받아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y는 이유 없이 미움 사고, 미운털 박히고, 따돌림당하고, 서글프게 살아봤기 때문이다. 귀신 장난질에 인생 놀아나 봤기 때문이다. 그 말은 y만큼 사람 맘을 두루 이해할 사람은 드물단 말이다. 그런 사람은 편향되면 안 된다. 누구든 위로받고, 누구든 괜찮아질 수 있는 걸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상처받은 세월을 쓸모없게 두는 격이다. 신이 있는 사람은 저마다 할 일이 있다. 네가 상처받은 만큼 남을 이해하는 것, 그게 너를 지키는 할아버지의 뜻이고 네가 갈 길이라는 걸 나는 안다. 무엇보다 너는 그릇이 커서 여러 사람 담아내고 살아야 한다.


 y는 점만 보러 갔다면 돕고 살아라, 베풀고 살아라, 그런 말만 들어서 짜증이 났댔다. 세상은 내게 해준 것도 없는데 뭘 자꾸 도우라는 건지 몰라서 화만 잔뜩 냈단다. 그건 점 보는 사람들이 y에게 말할 줄 몰라서 그렇다. 너는 상처받아 본 사람이잖아, 상처받은 사람 맘 알잖아, 그런 너만큼 남에게 힘 되는 말 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 거야, 그렇게 말해줬어야 한다. y는 친절하게 말만 해주면 듣는 애다. 걔 인생은 그 단순한 걸 못 받아서 삐뚤어지고,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그랬을 것이다. 나는 y의 진가를 아는 사람 중 하나이고 싶다. y도 누군가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y와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이대로 인연을 맺어 영영 볼 수도 있고, 어느 날 그 애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몇 년 후에는 졸업도 하고, 연출도 잘해서 돈도 많이 벌고 이름도 났으면 좋겠다. 너희 집 유전자에 욕심이 그득한데 그 욕심 가득 채울만한 돈, 명예 얻고 살았으면 한다. 남보다 똑똑하게 태어나고 신이 있어 감이 좋은 대가로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살았는데 그 정도 취득해도 된다.


 열심히 살았으면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이상하게만 보이던 세상이 이해될 때, 좋아질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y가 그 순간을 꼭 살아봤으면 한다. 나는 오래오래 y 편이 돼 주려고 한다. 이 글은 현재 진행형이다. 네 편의 글을 썼지만 언제 다시 시작할지 모른다. y는 반드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울하고, 아프고, 당장 막 어떻게 될 것 같고, 미칠 것 같은 y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 y는 돈 잘 벌고 잘 먹고 잘 산다’는 말로 글을 시작할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여러 사람이 y의 때를 기다려 줄 것이라 믿는다. y는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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