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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우 Jun 27. 2024

무당과 카페 사장의 남해 여행기.

 계획 세우기의 달인인 나 이윤우를 무계획 인간으로 만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계획이 없다. 나는 그들의 계획 없음에 지난 몇 년간은 자주 화가 나고, 그들과 두 번 다시 여행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다시 지고 말았다. 그게 그들의 매력이다. 도무지 당해내지 않고는 못 배길 마성의 인간들…. 그들은 미쳤다. 좀 미친 게 아니라 자주 도가 넘는다. 인생 마구잡이로 산다, 먹고 노느라 바쁘다 같은 게 아니다. 내 친구들은 앞뒤가 같은 말을 하고, 정의감이 충만하며 먹고 살기 위해 이 악물고 일하지만 섣불리 남을 이용하지 않는다. 담백하고 단단한 서사가 그럴싸하게 미친 것처럼 보인다.


 베트남을 가니, 일본을 가니, 유럽을 가니,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남해를 택했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7시까지 장사를 하는 우영은 가게를 오래 비울 수 없었고, 미미와 나는 지금이 아니면 9월까지 꼼짝 법당을 지켜야 해서 멀리 못 갔다. 차로 이동이 가능하고 동네를 멀리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을 내며 괜찮은 특산물이 있고, 경치는 끝내주고, 커피가 맛있는 카페 있는 데가 어딜까 보니 남해였다. 장마 전선이 가까워진다는 뉴스를 봤으나 일단 무시. 계획 없음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날씨의 요정이 있다. 미미가 간곡히 바라면 오던 비도 멈춘다. 미미를 믿어보기로 한다.


 비는 안 왔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3일만 하늘이 갰다. 출발 전까지 억수같이 오던 게 차 시동을 거니 멈추는 기적을 봤다. 세상에는 정말 요정이 있다고 다시 믿었다. 바다 헤엄칠 것을 대비해 가벼운 티셔츠, 모시 반바지, 비싼 스피커만 싣고 떠났다. 준비물을 보라. 가벼운 티셔츠, 모시 반바지, 비싼 스피커…. 일상, 업무, 계획에 찌든 지난날은 다 벗어던지고 오로지 기분에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이 보이잖은가. 더 중요한 것은 오로지 기분에만 충실해도 괜찮다는 친구들과 함께라는 것이다. 타자가 기분에만 충실한 게 얼마나 열받는 일인지 아는가. 그 배려 없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연대한다. 우리의 연대는 우리의 서사에서 온다. 우리는 사뭇 비슷한 서사가 있다. 어디서도 질 수 없어서 온갖 눈물 콧물 짜내며 피와 살을 깎은 서사, 기생하기 싫어서 독종처럼 굴다가 병에 걸린 서사, 우리가 비슷하게 겪어온 서사들이 우리를 우리로 내버려 둔다. 각자의 기분에 충실하고, 제멋대로 굴고, 가끔 미친 것처럼 삐딱해도 저년 저거 저러다 말겠지 피부로 알게 한다.


 이번 여행은 우영의 기분을 맞추는 게 쟁점이었다. 우영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독하게 일하고 잘 쉬지 않는다. 우영에게 휴무란 온갖 에너지를 끌어와 하고 싶은 걸 다 해야만 하는 시간이다. 나는 우영이 하고 싶은 잠수, 헤엄, 갯벌에서 가재 잡기, 물안경 쓰고 물고기 보기, 직접 잡은 해물을 잔뜩 넣어 라면 끓이기 등을 함께 했다. 우영은 동네로 돌아갈 생각만 하면 몸이 이상해진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야만 한다. 돌아가서 우리가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돌려줘야만 한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소고기를 좋아하는 미미를 위해 이틀 연속 부챗살을 기막히게 굽고, 멍게와 해삼, 산낙지, 소고기를 한 쌈에 넣어 내내 먹었다. 보양식만 골라 먹었다. 양기를 가득 채워 부산으로 돌아왔다. 얼굴에 광이 돌고 피부는 부드럽다.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보면 이렇다고 즐거워한다. 나는 이제 9월까지 다 차버린 예약 일정을 수행해야 한다. 이메일로 개인의 평생 사주를 정리해 보내주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단 이틀 만에 9월까지 예약이 찼다. 미미야 말할 것도 없고, 우영은 늘 그래온 것처럼 가게 문을 열고 빵을 구워야 한다. 남보다 이르게 다녀온 여행인 만큼 남보다 앞서 누군가를 도와야겠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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