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소송을 취하하신다구요?
미국 인기 시트콤 <브루클린 나인 나인>의 다혈질 형사 캐릭터 로사.
로사는 자신과 같은 또라이 형사 '에이드리안'을 만나 사귀고 하룻밤만에 결혼도 약속하지만, 두 사람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죽일 듯이 서로를 저주하며 싸운다.
"지옥까지 쫓아가겠다" "가만 안 두겠다"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라는 말을 하며 서로에게 달려들다가,
돌연 우당탕탕 서로의 목을 감싸 안고 입을 맞추곤 한다.
웃기라고 넣은 장면이겠지만, 이 커플을 볼 때마다 부부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부부의 세계란 참 기이하고도 심오한 것이어서, 경찰이 출동할 만큼 큰 싸움을 벌이고도 하루아침에 화해하여 일상으로 회복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도 생겨난 게 아닐까.
이 '칼로 물을 베는 관계'는, 부부가 헤어지는 이혼소송에서도 다르지 않다.
소송진행 중, '소송을 그만하겠습니다!'라고 접는 것을 [소 취하]라 부른다.
민사소송 등 다른 소송에서는 확실한 사유가 있어야 소를 취하하곤 한다.
예를 들어, 소송을 제기한 목적이 이루어졌거나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피고가 돈을 갚았거나) 또는 소송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경우 등이 있다 (승소할 줄 알고 소송을 진행했지만 막상 상대방이 낸 증거를 보니 자신에게 더 불리하다거나).
그런데 소송이 잘 진행되다가도, 별다른 사유 없이도 하루아침에 취하되는 일이 흔한 영역이 있는데.
바로, <이혼소송>이다.
오늘도 평화롭게 근무를 하고 있던 변호사.
의뢰인인 갑돌이의 전화를 받는다.
갑돌: 변호사님, 저 소송 취하하려고요.
변호사: 갑자기요?
갑돌: 네, 생각해 보니 애들도 어리고... 한 번 더 노력해보고 싶어요.
갑돌이는 어제까지만 해도 갑순이를 욕하는 내용이 담긴 20페이지의 진술서를 써오고,
갑순이 명의의 재산을 1원의 누락도 없이 모조리 조회해 달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갔던 의뢰인이었다.
변호사와의 티타임 내내 아내 갑순이를 욕하기 바빴던 갑돌.
갑순이 역시, 반박서면을 낼 때마다 갑돌이에 대한 각종 인격모독적 표현으로 갑돌이를 공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은 그야말로 '지저분한 전쟁'이었다.
(이 기회를 빌어, 공격적인 서면을 제출하는 변호사들을 변호(?)하자면, 변호사가 서면에 아무리 필터링을 거치고 싶어도 고객인 당사자가 강경하게 요구하면 과도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변호사: 취하는 어렵지 않지만, 부동산 감정까지 들어간 상황인데...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변호사는 갑돌이에게 '취하는 급하지 않으니, 며칠 더 생각해 보고 오라'며 돌려보낸다.
소송 취하를 성급히 결정했다가 후회하는 의뢰인들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소송 취하가 확정되면 되돌릴 수 없다).
며칠이 지나, 갑돌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갑돌이는 갑순이와 잘 화해했다며, 예정대로 취하를 진행해 달라고 한다.
취하는 하루도 안 되어 이루어졌다.
소장을 준비하는 건 오랜 기간이 걸려도, 법원에 (상대방의 동의 도장이 찍힌) 소 취하서를 제출하고 법원에서 이를 처리하기까지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갑돌이는 그렇게 다시 갑순이와 부부관계로 돌아갔고, 치열하게 진행되던 이혼소송은 허무하리만치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이혼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편안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고,
반대로 관계회복이 되지 않거나 또 다른 갈등이 생기면서 취하를 후회할 수도 있다.
다만, 가정을 지킨다는 선택지는 그 누구도 '오답'이라고 할 수 없기에, 변호사로서도 당사자의 취하 의사가 확고하면 신중히 생각할 시간을 권유드린 뒤 당사자의 의사대로 취하신청서를 넣고는 한다.
그런데, 가끔 변호사가 오지랖을 부려 '다시 생각해 보시라'며 취하를 말리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나는 오지랖을 꽤나 많이 부리는 변호사다).
바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유형이다.
A 씨가 처음 사무실에 왔을 때, 참 기나긴 면담을 했다.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해 이제 막 뒤집기를 한 아이를 두고 있던 A 씨는, 처음 남편을 만난 순간부터가 후회의 시작이라고 했다.
(A 씨는 말했다.
"그날 남편과 술을 먹는 게 아니었는데.")
술자리에서 남편을 처음 만나, 농담도 잘하고 호방한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호감을 너무 느낀 나머지 (?) 세 번째 술자리를 가지던 날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당황했지만, 남녀 모두 나이가 꽤 찬 상태여서 출산 및 결혼을 결정했다.
(A 씨는 말했다.
"그 때 결혼을 하기로 하는게 아니었는데.")
결혼 준비 과정에서도 두 사람은 매일같이 싸우기 바빴다.
알고 보니 남편은 매우 폭력적인 성향이었고, 큰 다툼도 여러 번 생겼다.
두 사람의 갈등은 집안싸움으로까지 번져서, 결혼식장에서 사돈끼리 고성을 내지르는 바람에 경찰까지 출동했다고 한다.
(A 씨는 말했다.
"그때 결혼식에서 엎었어야 했는데.")
두 사람은 우여곡절을 거쳐 살림을 합쳤지만, 경찰에서도 '집중 관리 가정'으로 분류할 만큼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화를 참지 못한 남편이 아내를 때려서, 3개월 간 분리 (접근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부부의 특징은, 싸움만큼 화해도 빠르다는 거였다.
싸울 때는 냄비 던지고 물병 던지고 머리에 피가 날 만큼 싸우다가도, 얼마 뒤 술 한 잔 하며 쿨하게(?) 풀곤 했다.
A 씨가 처음 사무실에 왔던 것은 남편이 가정폭력으로 접근금지 처분을 받아 따로 살고 있던 때였다.
A 씨의 이야기를 듣고, 증거자료들을 모아 소장을 접수했다.
그런데 소장 접수 후 한 달 여도 지나지 않아, A 씨에게 연락이 왔다.
A 씨: 변호사님... 소 취하 가능할까요?
솔변: 무슨 일 있으셨어요?
A 씨: 남편이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고... 사과도 하고... 진짜 반성한 것 같아서요.
솔변: 지금 남편분은 통신, 주거지 접근 다 금지되어 있는데 어떻게 만나셨어요?
A 씨: 실은.. 남편이 집에 오고 싶다고 계속 그래서.
며칠 전부터 다시 들어와 살고 있어요.
솔변: (헉!)
(훗날 A 씨는 말했다.
"그때 남편을 집에 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A 씨는 아직 아기도 어리고 남편이 정말 안 그러겠다고 했다며, 소송을 취하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소장만 접수한 상태로 소송이 취하되고, 약 보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왔다.
A 씨: 변호사님... 소송 접수 다시 가능할까요?
솔변: 무슨 일 있으셨어요?
A 씨: 술 먹으니까 또 난동을 부려서요. 다 때려 부수고 난리가 났어요. 저도 좀 던졌고... (?)
소장 다시 넣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접근금지 기간 남았으니까 다시 남편 내쫓을 수 있나요?
솔변: (헉...)
(A 씨는 말했다.
"그때 취하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다시 A 씨를 대리해서 이혼소장을 접수했고, 1차 조정기일 때까지 별 일 없이 소송이 진행되었다.
그 사이 A 씨와 남편은 계속해서 다투었지만, 오히려 A 씨의 이혼의사를 확고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2차 조정기일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A 씨: 변호사님, 저 소송 취하하려고요.
솔변: 왜요?
A 씨: 남편이 미안하다고 1,500만 원을 보내줬어요.
그리고 이혼하면 집도 다시 구해야 되잖아요. 육아휴직 중이라 경제상황도 여의치 않고.
그냥 다시 한번 잘 지내보려고요.
솔변: ㅠㅠ
이번에는 A 씨를 좀 길게 설득을 했다.
6개월도 안 되는 결혼기간 동안 경찰만 20번을 넘게 부르셨는데 후회하지 않겠냐, 이혼소송을 진행하면서 중간에 남편이 달라지는지 보고 나중에 취하해도 관계없다, 좀 더 지켜보셔라 등등...
나의 이야기를 듣고 A씨도 며칠 더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A 씨의 남편은 계속 아내에게 취하를 종용했고, A 씨는 결국 또다시 소송을 취하했다.
이후 연락이 없어서, 가끔 A 씨가 잘 지내시려나 속으로만 궁금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A 씨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건 일 년이 지난 뒤였다.
A 씨: 변호사님, 저 이 남자랑 진짜 이혼해야겠어요.
솔변: 무슨 일 있으셨어요?
A 씨: 글쎄 저에게 준 돈이, 대출을 받아서 보낸 거였더라고요.
술 끊고 육아 참여하기로 한 약속도 하나도 안 지키고... 이번엔 진짜 이혼할래요.
솔변: ......
A 씨의 세 번째 이혼 소장을 접수하기 전, 신신당부를 했다.
법적으로는 취하가 여러 번 가능하더라도 선택은 신중하셔야 하고, 또다시 취하생각이 드시더라도 소송을 진행하시면서 지켜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세 번째 이혼소송.
그 사이에도 A 씨와 남편의 화해 시도는 여러 번 이루어졌고, 취하하고 싶다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사실 변호사가 의뢰인의 취하 요구를 막을 권리는 없지만, 오지랖을 부려 그때마다 '다시 생각해 보시라.'며 강경하게 돌려보냈다.
A 씨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고, 남편의 반성(하는 척)과 구슬림에 매번 넘어가곤 했다.
또다시 후회를 할 게 불 보듯 뻔했다.
A 씨의 의사 번복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그의 남편은 정말로 '이혼해야 마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A 씨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돕기라도 하듯, 이전과 달리 A 씨가 쉽게 소를 취하하지 않고 이혼소송이 길어지자 남편의 본색은 금세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남편이 성매매업소를 드나들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결국 A 씨는 세 번째 시도만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
만약 취하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결국 A 씨는 네 번째 이혼소송을 진행했을 것이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이듯, 이혼소송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관계회복의 여지가 없어서 오랜 고민 끝에 소송을 진행했겠지만, 어디까지나 원고와 피고는 부부사이인 데다 자녀들까지 있는 경우 소송 중에도 수많은 생각과 고민이 오갈 수밖에 없다.
앞선 연재 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혼소송에는 정답이 없다.
때문에, 소송을 취하하고 가정을 지키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취하를 고민하는 의뢰인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기회를 주었는데도 배우자가 달라지지 않아서 다시 이혼소송을 할 땐 어떻게 되나요?"다.
이때 변호사의 역할은, 소송 취하 후 시간이 흘러 다시 두 사람이 이혼을 하게 될 경우 현시점에서의 이혼소송과 비교해서 소송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이고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의뢰인들은 '소송을 취하하고 다시 배우자와 법적인 부부관계를 이어가는 것'과, '계속 이혼소송을 진행하는 것'중에 더 나은 선택지를 결정하게 된다.
다만, 결과는 부부의 몫이기에, 어떤 선택을 하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