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이냐 연인이냐, 한 끗의 차이
부부가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게 되면 '법률혼' 관계가 된다.
혼인관계 증명서에도 등재되고, 나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도 [배우자]라고 표기된다.
그러나, 요즘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지내는 사실혼 부부가 꽤 많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살아보고 결정하기 위해서', '대출제한 때문에' 등등의 이유가 있다.
또는, 곧바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게 그냥 요새 결혼시장의 트렌드인 것 같기도 하다.
법률혼이든 사실혼이든 결혼을 했다면 부부가 된다는 것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법적 관점에서는, 법률혼과 사실혼 사이에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먼저, 법률혼(혼인신고를 한 부부)에서는 헤어지려면 반드시 이혼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만일 부부간에 이혼하기로 합의가 되지 않은 경우라면 소송을 통해 이혼 사유를 인정받아야 한다.
(다만, 그 사유를 인정받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것은 앞선 연재 편에서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사실혼은 헤어지는 데 있어 부부 상호 간의 동의도, 별도의 절차도 필요하지 않다.
즉, 어느 날 갑자기 "너랑 헤어질래."라고 하면 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 소송을 할 뿐이다).
두 번째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이 없다.
즉, 수십 년 산 부부여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배우자 중 한 명이 죽더라도 남은 배우자에겐 재산을 상속받을 어떠한 권리도 없는 것이다.
(*예외의 경우가 있지만, 개별사안에 따라 다르므로 자신의 사안에 대해 상담 또는 자문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극단적으로는 사실혼 배우자가 오랜 기간 아픈 배우자를 헌신적으로 간병하고 부양하다가 상대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 경우, 남처럼 살며 나 몰라라 하던 자녀들 (또는 자녀가 없는 경우 조카들)이 찾아와 홀랑 상속을 받아버리는 사례도 왕왕 존재한다.
헤어지는 데 절차가 필요 없다는 것과, 배우자로서 상속권이 없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사실혼은 법률혼과 똑같이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헤어질 때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으며, 사실혼 파기 (결혼 파탄)에 상대방의 귀책(잘못)이 있을 경우 위자료도 청구할 수 있고, 만약 상간자가 있다면 상간소송도 가능하다.
법률혼 부부가 재산분할 및 위자료를 청구하는 경우 '이혼 및 재산분할', '이혼 및 위자료'등으로 부르지만, 사실혼 부부의 경우 '사실혼 파기에 따른 재산분할 청구', '사실혼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위자료)'청구 등으로 부른다.
이에 앞서, 당연한 얘기지만 재산분할이든 위자료든 청구하려면 당연히 사실혼 관계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꽤 자주 '사실혼이냐 아니냐' 쟁점을 다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갑돌이는 갑순이는 연애를 하면서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 기간이 길어지면서, 두 사람은 점점 연인인지 부부인지 경계가 모호한 관계로 변해갔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도 한 이불 덮고 한 식탁에서 밥 먹으며 부부처럼 사는데 결혼을 굳이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레 물 흐르듯 부부로 살게 됐다.
두 사람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생략했지만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의 집에서 '사위와 며느리'로 불리면서 남들 보기에는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돌이가 바람을 피웠다.
총각 행세를 하고 여자를 만난 것이다.
갑순이는 갑돌이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변호사를 선임하여 갑돌이에게 소장을 보냈다.
사실혼 파탄 원인인 갑돌이가 손해를 배상하고, 함께 산 기간에 따른 재산분할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갑돌이로부터 온 답변서를 보고 갑순이는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저는 갑순이와 연인관계였을 뿐입니다.
부부가 아니었으므로 사실혼이 성립할 수가 없고,
이를 전제로 한 위자료나 재산분할 청구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갑돌이는 자신과 갑순이는 그저 연인사이로 동거를 하였을 뿐, 부부로 산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
그렇다면, 법원에서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한쪽이 사실혼임을 부인하는 경우, 두 사람이 사실혼이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명확한 법적 규정은 없다.
다만, 워낙 사실혼을 다투는 사건이 많기에 이에 관한 판례들은 여럿 존재한다.
혼인신고만 안 한 부부이냐, 연인이냐를 판단하는 기준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은 아래와 같다.
-갑돌이는 갑순이와 결혼식을 올렸는가?
▶ (혼인신고를 안 해도 대부분 식은 올리니, 이 단계에서 해결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같은 집에서 동거하였는가?
▶ 우리나라 법에서는 부부간의 동거 의무를 꽤 중요하게 본다. (상호 합의된 주말부부나 롱디 부부 등의 문제는 논외로 한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생계를 함께하였는가?
▶ 서로의 자산, 보험, 생활비 등이 공유되었는지 여부를 본다.
(만약 결혼식 등으로 이미 사실혼이 증명되었다면 중요하지 않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의 가족들과 교류하였는가?
▶ 법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사항 중 하나다.
즉, 많은 부부들이 그러하듯 서로의 가족행사에 참여하고 며느리와 사위로서 교류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사회적으로도 부부로 여겨졌는가?
▶ 즉, 두 사람이 서로에게만 여보 당신 한 것이 아니라 주변 지인들에게도 결혼한 부부로서 알려졌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곤 한다.
+(또는, 사안마다 판사가 재량으로 판단하는 사실관계들도 있다).
위와 같은 요건들을 전부 충족해야 사실혼 인정이 된다는 이야긴 아니다.
실제로는 이 중 한 두 가지만 충족하더라도 부부사이임을 입증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결혼식 (아마도 눈으로 보이는 증거기에 그런 것 같다)'과 '가족 간의 교류'인 듯하다.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례에서,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수년간 동거하며 생계를 함께한 데다 명절과 가족행사마다 며느리와 사위 역할을 한 정황은 남아 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를 배우자로 인식하며 살았을 것이다. 즉, 갑돌이도 갑순이와 결혼생활을 한 사실은 알고 있지만 변호사와 부인하는 쪽으로 전략을 짰을 것이다).
따라서, 갑돌이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갑순이는 여자친구일 뿐이라고 항변하더라도 사실혼 관계가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혼 관계인지 여부가 모호한 경우,
(예를 들어, 남녀가 황혼의 나이에 만나 혼인신고 없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으나 결혼식도, 원 가족 간의 교류도 딱히 없었던 경우)
사실혼 여부 판결에는 법원의 재량이 꽤 큰 영향을 미친다.
a법원 b재판부에서는 사실혼이라고 판단을 내린 사실관계에 대하여, b법원 c재판부에서는 똑같은 사실관계를 놓고 '부부가 아닌 연인에 불과하다'라며 청구를 기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사실혼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실혼을 판단하는 요건들 중 나에게 해당되는 것을 가지고 재판부에게 상대방과 사실혼 관계였음을 객관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의 사실혼 주장을 부인하는 입장이라면, 상대방이 제출한 증거들이 보통의 연인관계에서도 현출 될 수 있는 것임을 피력함과 동시에 두 사람의 관계가 결혼까지는 아니었다는 입증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결혼사진 등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 변호사는 사실혼으로 인정받을 만한 -또는 상대의 사실혼주장을 부인할 수 있을만한- 증거들을 추려내어 의뢰인에게 요청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사실혼 여부를 다투는 사건을 할 때마다 늘 이런 말이 떠오르곤 한다.
<피고는 진실을 알고 있다.>
소송 전략에 따라 당사자들은 사실혼을 인정하거나 부인하는데,
그들은 사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들이 부부였는지, 아니면 그저 연인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