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시이와 타노시이
며칠 전,
일을 마치고 아는 형님과 잡힌 번개 약속 덕분에 오랜만에 함께 맥주를 한 잔 했다.
늦게까지 여는 곳이 없어 우리는 50분만이 허락된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주문을 하고 서둘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야 했다.
"오랜만에 뵈었는데 형님께 뭔가 타노시이(楽しい: 즐겁고 풍요로움) 한 게 필요한 느낌입니다."
나는 일본어를 잘 모르는데 가끔씩 한글이 주는 뉘앙스 그 이상을 전달하고 싶을 때
외국어를 마법 쓰듯이 말할 때가 있다. 나에게 '타노시이'는 재미있고 흥미 있는 상태 이상의
잔잔하면서 긍정적인 떨림의 재미...라는 내 나름의 자의적 해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색깔을 상대방이 함께 이해하거나 비슷한 느낌을 줌으로써
상대방과 함께 묘한 공감의 소용돌이 곁에서 이는
바람을 함께 느끼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래, 우예 알았노? 안 그래도 요즘 되게 우울했다.
사실은 사미시이(さみしい: 쓸쓸하고 적적함)하지"
나는 사미시이 라는 말을 몰라서 여쭤보았다. 그리움...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고 하셨다.
사미시가... 처음 듣는 단어인데, 사미...라는 느낌이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슴 한 켠이 살짝 짠했다.
시간도 얼마 없어서 주문한 음식과 맥주를 몸 안으로 없애며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오랜만에 두 남자는 웃음꽃을 피웠다.
나는 타노시이, 형은 사미시이.
사미시이는 내 안에 중심이, 기댈 중심이 없는 느낌이라 정말 쓸쓸해 보인다.
형의 모습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타노시이 한 게 필요할 거라 말했던 거다.
타노시이는 좀 더 안정된 느낌을 준다. 그래도 마음 놓을 곳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해롭지 않은, 이롭고 생산적인 재미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모습이다.
타노시이 한 동생에게 사미시이 한 형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한 때 사미시이 했던 때가 있었고, 앞으로도 알 수 없는 그 시간을 겪고 계시는 형님께
이 글을 적으면서도 계속해서 응원의 기도를 보낸다.
어서 타노시이 할 것을 찾으셔서 함께 타노시이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