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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Nov 26. 2021

왜 달리는가.

달리기가 싫었던 자의 러닝스토리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몇시지...?

아침 6시다.

뭐야, 완전 새벽이잖아. 이 시간에 왜 알람이 울리는 거야...



#1. 아침러닝을 하게 되는 과정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해야 할 만큼 급한 일이 없다. 무기력을 핑계로 나의 한량력(한량처럼 하루를 설렁설렁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최고치에 다다랐기에 나는 요즘 무엇이든 열심히 하지도 억지로 하지도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놓쳤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카오톡 나와의 대화창을 열어보았다. 기억할 일이 있거나 잡아두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카톡 대화창에 그때그때 적어놓는다.


대화창에 '아침러닝'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어젯밤에 갑자기 아침공기를 마시며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요즘 아주 즉흥적이고 욕구에 충실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욕망은 금세 휘발된다. 어제는 분명 하고 싶었는데 오늘이 되면 하고 싶지 않아지며, 심한 경우 시간 단위로도 달라진다. 굳이 메모를 하고 알람까지 세팅한 것을 보면 어제는 아침러닝을 꽤나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더 자고 싶기만 하다.


다시 이불을 덮고 누우려다가 생각보다 정신이 맑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어쩐 일이지? 아침잠이 많은 체질이라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보통 정신이 몽롱하다. 기본 투샷 이상의 진한 아메리카노쯤 마셔줘야 카페인이 정신을 깨워준다. 그런데 한방울의 카페인도 없이 이리도 말짱하다는 것은 꼭 달리러 나가라는 계시가 아닐까? 달리러 나가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말같지도 않은 비논리적인 논리에 따라 후다닥 운동복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생각이 길어지면 행동은 무뎌진다. 조금이라도 할 마음이 들었을 때 최대한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공기는 꽤 쌀쌀했다. 상쾌함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기분이 생생해진다.


생각이 길어지면 행동은 무뎌진다.



아침 공기는 신기할 정도로 신선하다. 오후 공기가 따라잡을래야 따라잡을 수 없는 신선함이다. 그렇다고 오후 공기가 별로라는 것은 아니다. 오후 공기에는 아침 공기에 없는 훈훈하고 나른한 매력이 있다. 같은 공기가 시간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사실은 느낄때마다 경이롭다.


공기에는 온도나 습도 같은 과학적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색채, 분위기, 향기 같은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공기의 개성이다. 아침 공기, 낮 공기, 저녁 공기, 밤 공기가 다르고 봄 공기, 여름 공기, 가을 공기, 겨울 공기도 각각 다르다. 공기의 매력을 느낄 때면 우리나라의 4계절에 진정으로 감사하게 된다.  


신선한 아침 공기는 시들어가던 '달리고 싶은 마음'에 생기를 주었다. 아침을 한껏 느끼며 오직 나의 두 다리로 달리는 시간. 힘이 들고 숨이 차지만 기분이 좋다.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 에너지가 차오른다. 그 묘한 느낌에 점점 빠져든다.



#2. 달리기가 언제부터 좋았냐고?


나는 운동신경도 체력도 좋지 않은 사람이다. 학창시절부터 체육시간이 싫었고 달리기는 더더욱 싫었다. 싫었기에 못했고 못했기에 더욱 싫었다. 운동회나 체육대회 때 빠짐없이 진행되는 달리기 경주에서는 늘 꼴찌였다. 개인 종목 꼴찌는 크게 상관없었다. 꼴찌가 대수인가. 원래 못하는 걸 못하는 건 타격이 없다. 싫어하는 건 잘하고 싶지도 않다. 문제는 전체 이어달리기였다. 모든 인원을 화합한다는 명분의 전체 이어달리기에 참여하게 되면 꼭 내가 속한 팀이 졌다. 민폐인물이 되는 것 같아 괴로웠다.


학창시절 뿐만 아니라 살아오는 내내 달리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걸어가다가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때 녹색 신호등이 깜박거리고 있으면 뛰어서 건너가는 것보다는 한 텀을 기다리는 것을 선호했다. 뛰면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시간이 신호등에 표시되어 있어도 그랬고, 날씨가 너무 춥거나 너무 더워서 한 텀을 기다리는 일이 꽤나 고통스러울 것 같은 날에도 그랬다. 나에게는 언제나 뛰지 않는 선택이 더 좋은 선택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가 스스로 달리게 되었을까?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사람들은 왜 지겹고 힘든 달리기를 할까? 일반인 마라톤 대회는 왜 저렇게 흥행할까? 그러다가 직접 한 번 해보면 궁금증이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경험은 늘 옳다고 생각하기에 10km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평생 자발적으로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마라톤에 참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5분 정도 달리는 척 하다가 기념품만 받아서 돌아올 것이 뻔했다. 연습은 해야겠는데 혼자는 안 할 것 같고, 주변에 같이 할 만한 지인은 없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러닝 모임'이라는 시스템(?)을 발견했다.


러닝모임에 첫 참여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이상했다.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수공원 두바퀴를 걷다가 뛰다가 다시 걷다가 하면서 어떻게든 완주하고 난 후 마시는 음료수는 신비로울 정도로 맛있었다. 참여 횟수가 늘어갈수록 달리고 싶은 마음도 커져갔다. 러닝모임 활동으로 달리는 즐거움을 제대로 알게된 것이다. 언제나 뛰지 않는 선택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행해왔던 내가 알고보니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역사적인 사건이자 신박한 발견이었다.



사람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며, 그 생각은 틀리기 쉽다. 내가 좋아한다고 혹은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생각과 다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언가를 꾸준히 일정기간 동안 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하기 싫을 수 있다. 안하던 일이니까 시작하는데 힘이 많이 들 것이다. 계속해서 꾸준히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즐겁게 느껴지는 일이 있다. 즐겁게 느껴지면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진다. 그 일이 바로 좋아하는 일이다.


꾸준히 하다보면 즐겁게 느껴지는 일이 있다.


그렇게 발견하게 된 소중한 취미, 달리기. 처음에는 너무 말이 안되는 것 같아서 표현도 못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거짓말인 것 같이 느껴졌다. 잠깐 빠져든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흥미는 대개 금방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달리기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내 좁은 오지랖이 넓어지는 순간이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좋아하게 되면 주변에 나누고 싶어지는 것 같다. 좋은 건 많이 퍼뜨릴수록 좋으니까.



#3. 내가 생각하는 달리기의 좋은 점


(달리면,)

1. 기분이 좋아진다.

2. 체력이 튼튼해진다.

3. 부지런해진다.


(달리기는,)

4. 별다른 준비물이 필요없다.

5.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6. 혼자서도 할 수 있다.

7. 온전히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다.


요약해보면 달리기는 몸건강/마음건강 양측에 모두 이롭고, 실행하는데 제약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6번과 7번이 무슨 차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6번은 동료의 필수성에 관한 항목이고, 7번은 도구의 필요성에 관한 항목이다. 그리고 7번에는 조금 더 확장된 의미가 담겨있다.


'7번, 온전히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은 모든 것이 내가 하기에 달렸다는 의미이다. 내가 뛰면 뛰어지고 내가 멈추면 멈춘다. 천천히 뛰면 천천히 뛰어지고 빨리 뛰면 빨리 뛰어진다. 어떤 기구나 도구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누가 대신 해 줄 수도 더 잘하게끔 보조해 줄 수도 없다. 그 오롯이 온전하다는 느낌이 자유롭다는 느낌으로 확장된다.


모든 것이 내가 하기에 달렸다.



자유롭다는 느낌.

멀리 떠나지 않아도,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문을 열고 나가서 두 다리로 달려가기만 하면 자유를 느낄 수 있다.


달리기는 유연하다. 순식간에 자유로워질 수도 있고, 원할 때에 얼마든지 힘들이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무언가에 구속되거나 제약받지 않는다.


자유로움이 좋아 자꾸 달리게 되면 많은 일들이 생긴다. 마음이 정화되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생각이 정리되고 의욕이 생겨서 부지런해진다. 폐도 전신 근육도 점점 튼튼해진다. 체력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충만해지고 하고 싶은게 많아진다. 활동량이 늘어나면 해내는 일들이 많아지고 결과물이 눈에 보이고 더욱 활기 있어진다. 완전한 선순환이다.


물론 거창한 선순환이 일어나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달리기는 당장의 회색 먼지 같은 기분을 털어버리는 데도 엄청 효과적이다. 먼지를 매일 털면 더러워지지 않는다.


마음청소기, 건강지킴이, 생활활력소, 행복촉진제... 여러가지 수식어를 붙여봐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달리기는 이런 단어들보다 훨씬 근사하다.


 




오늘도 나는 무기력하지만 달리기를 했다. 그것도 아침에.

아침에 달리기를 하고 보물 같은 아침공기를 한껏 마시고 신선함 충만한 상태로 집에 돌아온 것 만으로도 오늘치의 의미있는 활동을 다 채운 느낌이다. 하루의 나머지는 마음 편하게 무기력하게 보낼 예정이다.


오랜만에 시원한 캔맥주를 사서 낮부터 마시고,

오랜만에 집에 있는 빔프로젝터로 영화 한 편 틀어서 봐야겠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편안한 나의 집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면 굉장히 행복할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무기력하고 그 와중에도 행복하다.

알 수 없는 체질이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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