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리고 삶, 그 어떤 선택.
제한 없는 돈이 있는 인생, 그 인생은 얼마나 행복할까?
통장 잔고는 화수분처럼 써도 써도 숫자가 줄지 않고, 1, 4, 6, 3, 9, 8... 숫자들만 앞뒤로 왔다 갔다 할 것이다.
그 숫자로 다른 숫자인 시간도 살 수 있다. 시간을 아껴 오롯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은 것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게다.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든 모든 것을 시도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물건을 사는 것부터, 훌쩍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여행, 배우고 싶은 기술과 학문, 한 번쯤 꿈꿔봤던 사업의 운영까지도.
가지고 싶었던 모든 것을 소유하고, 그득히 쌓인 물건들 사이에서, 원한다면 사람의 마음도 재화로 바꿔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많고, 많은, 풍족한, 끝이 없는 소유와 소비의 향연.
근데, 그 삶의 끝은 무엇일까?
끝없이 이어나가다 보면 이 삶에는 긴장 없는 지루함이 있을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정말로 중요한 가치인지 분간이 어렵게 될 것 같다. 이것도 저것도 비싸고 값진 것들이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선택받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불만족이 틈탈 겨를을 주지 않고 또 다른 것을 하면 되니까, 오랜 고민도 필요 없다. 쉽고, 빠르게, 간편하게 삶은 흘러갈 것이다.
내 관점에서는 인간은 총합에서 만족을 얻는 동물이라기보다, 가중치가 높은 만족감을 누리는 존재인 것 같다. 아니, 나는 반대로, 가중치가 높은 만족감을 누리는 존재를 보면 매우 인간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다 보니 무작정 총합을 늘리고자 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욕심쟁이군.'이라는 판단을 속으로 몰래 해버리는데, 사실 그 사람의 욕망 이면에 의도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단순한 필요, 허영심, 이타적 의도.. 무엇이 그 뒤에 숨겨져 있든 간에 그 상대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가용한(할) 자원 중에서 내가 만드는 선택과 포기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명확히 드러내는 결정적인 기준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운명을 가진 인간에게는 단순한 총합 대신 가중치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최대로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소심하게 끄적여본다.
이런 나 또한 여행에는 제약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행에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다. 준비 과정뿐 아니라, 여행을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예측되지 못한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들은 나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버릴래?"
스스로와 세상에 아주 솔직한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함이라는 성품과는 별개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거나, 내 가치의 줄 세우기를 구체적으로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쉽사리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다. 정체 모를 미련과 욕심이 눈과 마음을 가릴 때,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들로 인해 자유를 박탈당하고, 최고로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능력을 잃어버린다.
하와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무척이나 설레 왔고, 지금도 꽤 많이 설렌다. 하지만 동시에 여행에 필요한 많은 선택을 이어나가면서, 그 선택 때문에 놓쳐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걱정하고 아쉬워하는 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많은 것을 알아보면 볼수록, 다른 이의 생생한 경험을 엿볼수록,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계획과 준비는 뭔가 어설프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세상엔 너무 많은 좋은 것들이 있고, 그중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종류의 제약으로 인해) 언제든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욕심 많은 본능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인정하고 꺼내놓게 된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작은 실수나 실패도 용납하지 않게 되는 좁고 위태로운 마음이라는 것, 그저 누리기만 해도 좋은 여행까지 나는 실패자가 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삶을 여행처럼 살아야 하는데, 여행을 삶처럼 살게 된 나라니, 섬뜩하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내 여행은 늘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았다. 내 인생의 두 번의 유럽 일주 여행들은 늘 비가 쏟아졌다. 구름은 늘 나를 따라다녔고, 습기 찬 내 반곱슬 머리카락은 더욱 고불거렸고, 나는 방수 점퍼 안에서 축축하게 젖은 채로 유명한 관광지들을 희뿌연 풍경으로 바라보았다. 허탈하기도 한 그 순간들마다, 나는 스스로를 달래며 동시에 비 오지 않는 그곳을 상상했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뜨고 바라보면 화창한 그곳의 풍경이 다시 나에게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미래인지 과거인지 모를 시점에서 초대장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비 속에서 웃는 법을 알게 되었다.
또 한 번은 프랑스에서 벨기에로 향하는 기차에서는 1등석 칸을 잘못 타서, 이게 무슨 환대인가 하며 케이크 한 조각과 콜라 한 캔을 먹고 표 검사 때 150유로를 차장에게 뜯겼다. 실수였다고, 몰랐다고 빌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 상황이 너무 우습고 화도 났지만 지나고 나니 그저 좀 웃기고 돈이 새어나간 일이었다. 기차에 탈 때는 무조건 칸과 자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브런치 북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와 <3개월의 시간과 1000만 원>에서도 언급된 나의 마지막 여행에서는 갑작스러운 면접 일정으로 인해 조기 귀국해야만 했다. 마음과 몸이 분주하고 혼란스러워 누군가에게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할 수도 없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더없이 완벽했던 그때의 여행 덕분에 '모든 인생은 주어진 상황과 상관없이 여행할 수 있을 때 더욱 여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남에게 자랑할 만큼 성공적이지 않은 여행은 결국 실패나 손해가 아니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예상치 못한 좋은 것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 그게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약이 있기 때문에, 제약 안에서 누린 가치들이 정말 더 소중하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불확실함이라는 인식의 제약 앞에서 사람은 무력해지기 쉽지만, 결국 과거의 한 선택이 주었던 행복감을 기억할 수 있다면 적어도 움츠러들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여행도, 인생도 단 한 번 한 순간으로 종결되지 않고 이어져 그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좋은 공통점이 있다.
여행이든, 인생이든,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 이렇게 답할 수 있다면, 나는 반드시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어때?"
"난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