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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Mar 02. 2022

하와이 빅아일랜드 여행 #4. 각종 비치들

물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은 하와이 물구경

빅아일랜드의 흔한 주택가 풍경

지난 며칠간을 너무 거칠게만(?) 달려온 것 같아 좀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그 하와이 여행다운 하와이 여행을 해보자며 말이다. 빅아일랜드에 발을 붙인 이후로 날씨는 단 한 번도 흐리거나 비를 뿌리지 않았다. 오늘도 해변 가기에 딱 좋은 날씨로구나! 이름 그대로 빅아일랜드 섬이 워낙 크다 보니, 섬을 위아래로 종단하거나 좌우로 횡단하기에는 꽤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 크게 크게 목적지를 찍고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끼니 챙겨 먹기에도 시간은 늘 빠듯했다. 오늘은 맘먹고 규칙 몇 개를 정했다.

1. 동선 길게 잡지 않기.

2. 무조건 여유, 여유, 여유를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숙소에서 5분만 차를 타고 나가도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작은 해변이 있다.


아침잠에 깊이 빠져있는 동행을 두고 홀로 숙소 근처 산책에 나왔다. 마치 아무도 없는 해변 같지만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이 각자의 자리를 잡고 한 명은 명상에 심취해있고, 한 명은 야외에서 뭔가를 요리해 먹고 있다. 그들이 나처럼 여행자인지, 로컬 피플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시간을 서두르는 사람도, 무언가를 급하게 해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고 햇빛을 쬐며 물처럼 시간을 흘려보내버려도 괜찮을 것 같은 분위기의 자그마한 해변. 그제야 내가 얼마나 급하고 밀도 높게 생활을 해왔는지, 심지어는 여행을 와서도 충분히 그 긴장을 풀어버리지 못했는지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체감된다. 나는 하와이에 어울리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과 내면을 가진 사람인가 성찰하는 한편, 이곳에 스며들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순간적으로 닥쳐온다. 잠깐 공상에 잠겼다가 햇빛이 점점 덮쳐올 정도로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쁘지 않은 해변이었지만 내가 상상한 최대의 해변은 아니라는 이유를 대며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떴다.


빅아일랜드 여행에서 뜻밖이었던 점은 생각보다 음식점들이 일찍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조금 미적거리다가 늦은 아침, 점심을 먹게 되면 저녁을 4,5시 정도에 먹어야 하거나 애매하게 늦어져 8,9시만 되어도 사다 먹을 곳이 없어 방황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동선이나 이동시간이 잘 파악되지 않았던 며칠간은 식사 시간이  늦어져 결국 마땅한 가게를 찾지 못해 컵라면으로 때우는 경우도 꽤 많았고, 어찌어찌 식당에 가도 배불리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느낌보다는 "휴, 겨우 시간 맞춰 배 채웠다."라는 안도감 어린 식사가 대부분이었다. 영업 종료 시간이 이른 편이다 보니 일찍 문을 여는 가게들도 많았지만, 희한하게 힘들게 찾아가면 오후 2,3시에도 문을 닫아있는 경우도 많았다. 하와이의 서비스업은 우리나라의 서비스업과는 약간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체험한 순간들이었다. 요즘 한국도 서비스업이나 자영업자의 마인드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예기치 못하게 문을 닫거나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문을 닫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서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자기네들의 나름의 사정이 있으면 문을 닫아버리고, 구글 맵의 영업 정보도 업데이트하지 않곤 했다. 이런 이유들로 몇몇 식당들을 가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이거나, 본의 아니게 오픈런을 하기도 했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단면들을 보고 하와이의 사장님 및 노동자는 삶의 질이 매우 높을 것이라고 예상이 되었다.

솔드아웃으로 일찍 문을 닫거나, 휴점하는 날이 많아 맛보기가 쉽지 않다는 포케 맛집 <다 포케쉑>

환율을 고려하더라도 하와이의 음식 물가는 높은 편이어서, 외식으로 한 끼를 제대로 먹고자 한다면 인당 2만 원 정도는 족히 들었다. 여행이니 별 수 없이 사 먹을 수밖에 없긴 했지만 로컬 사람들은 아무래도 집에서 요리를 해다 먹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와 비슷하게 섬이다 보니 식재료나 각종 물건들의 값이 비쌀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예상만큼, 예상보다 조금 더 소비가 컸던 식비여서 나중에는 그냥 카드값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쿨하게 넘겼다. 매일 숙소로 돌아와 가계부를 쓰면서 한화로 계산된 비용을 보고서는 물론 약간의 동공 지진이 수반되곤 했다.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하며 합리화해보지만 맘이 쉬이 편해지지 않는 건 기분 탓이겠지?


어찌 되었건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해보는 빅아일랜드 해변 여행. 근데 이건 뭐, 아무리 봐도 온 섬의 테두리 부분에는 해변이 수십 개가 있다 보니 어디로 갈지 고르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다. 눈 감고 하나를 찍어도 크게 상관이 없을 정도였다. 고민을 하다가 포시즌즈 리조트 내에 있는 카페를 먼저 가보기로 했다. 하와이에 온 이후로 커피가 입맛에 잘 맞지 않아 나름(?) 고생 중이었기에, 제대로 된 커피를 마셔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리조트 내에 비치도 구경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코나 시내 쪽에서 해안가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루트. 오른편에는 구름이 멋지게 드리운 큰 산이, 왼 편에는 수평선의 끝이 없는 바다가 19번 국도 위 자동차들과 함께 한다. 찾아보니 큰 산이 보이는 지역은 "Pu'u Wa'awa'a Forest Reserve"라고 되어있다. 산이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광경은 실제로는 처음 보는 광경인 듯했다.

Pu'u Wa'awa'a Forest Reserve
19번 국도 위에서 보이는 산과 바다

그 길 위에는 도로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유일한 인공물이었고, 주변은 모두 거대한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한 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풍경을 맛보다 보니, 30분 넘게 쭉 한 길로 달려가야 하는 여정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경쾌한 비트의 음악을 틀고, 창문을 열고 팔을 쭉 뻗어보았다. 세게 달려도 불쾌하지 않은 바람결이 손 끝을 밀어 올렸다.


포시즌스 리조트 후 알랄 라이 내부

리조트에 머물지 않아도 주차장이나 카페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듣고 무작정 도착한 포시즌스. 몇 군데를 보다 보니 하와이의 이런 리조트들은 도로변부터 입구까지 길게 진입하는 내부 도로가 조성이 되어있고, 그 주변에 조경이나 골프장 코스 같은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오, 뭔가 다르긴 다르네.' 

빅아일랜드에서는 숙박비를 최대한 절약하고자 한인 민박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리조트 시설을 본 것이 처음이기도 했고, 빅아일랜드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는 다르게 사람의 손을 거쳐 아기자기하게 아름답게 꾸며진 모습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와. 특히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 보이는 청록빛 수평선과 잘 정리된 잔디밭, 수영장과 하얀색 선베드의 첫인상이 깊게 남았다. 환상 속에 그려보던 어느 나라에서의 꿈같은 휴식 여행의 이미지를 딱 구현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숙박을 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내부에서 만난 직원들은 모두 반갑게 인사해주고 도움을 주려는 서비스 마인드가 충만했다. 자유여행자인 나에게 이런 갑작스러운 환대는 좀 낯설긴 했지만, 뭐 나쁠 게 뭐 있겠는가. 이 기분에 잠시 취했다가 현실로 돌아와 다시 한번 돈 버는 이유에 대해서 절감하게 되었다. 언젠가 호기심에 검색해보았던 포시즌스 리조트의 1일 숙박비가 머릿속에 흐물거렸다. 음, 일단 커피나 마시러 가자!

포시즌스 리조트 내 Trading Company
Trading company cafe 내부

트레이딩 컴퍼니 내부에는 커피나 음료, 빵뿐 아니라 포시즌스 기념품과 간단한 잡화 및 기프트 제품들이 작은 상점처럼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다. 둘러보는 재미도 있고, 커피도 찐한 맛이 맘에 들었다. 솔직히 여기서 뭘 사 먹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리조트 내에 펼쳐진 비치

커피를 들고 천천히 걸으면서 가옥 빌라와 열대 우림의 여러 식물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리조트 내부를 구경하며 비치로 향했다. 가늘고 옅은 색의 모래 위에는 누구든 앉아 쉬어도 좋다는 것처럼 나무 의자가 드문 드문 놓여 있었고 나는 그 의도에 바로 순응했다. 아, 이것이 꿀 같은 휴식이구나. 의자에 앉아 내리쬐는 볕이 약해졌다 강해 졌다를 느끼며 다시 한번 긴 팔이 더운 이 공간의 온기를 온몸에 흡수시켰다. 잠이 오지 않지만 졸린 듯한 기분 좋은 노곤함이 찾아왔다. 항상 이런 좋은 해변에서는 타월을 깔고 해가 질 때까지 낮잠 자보는 게 꿈이었는데, 아직까지 해보지 못한 걸 보니 나는 그저 8282의 한국인인 게 틀림없나 보다. 무엇이 날 그렇게 바쁘고, 성급하게 만들고 있었을까? 나는 그 무언가에 동조해서 내가 원하는 아주 사소한 일조차도 포기하는 게 더 쉬워진 걸까? 실체를 알 수 없는 힘에 거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내가 조금은 나약하게 느껴져 서글펐다. 아무렴 어떤가. 나는 지금을 영원히 만끽할 테다.

항상 두 마리씩 짝지어 다니는 하와이의 새들
마우나 케아 비치 리조트의 비치는 public access가 가능하다.

다음 목적지이자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카우나 오아 비치, 마우나 케아 비치 리조트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마우나 케아 비치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원래는 public parking 자리가 경쟁이 심해 방문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인한 영향인지 조금 늦은 오후 시간이어서 그런지 수월하게 입장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5분 정도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비치가 보인다.

리조트 쪽에서 내려와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 퍼블릭 존에서 누워서 책을 읽거나 잠깐 쉬는 사람들, 맨발로 젖은 모래 위를 걷는 사람들. 갑자기 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눈앞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간 마스크를 끼고 답답하게 숨을 참아가며, 얼굴 가득 표정을 숨기고, 억지로 버티며 지내온 순간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느낀 건 잘못일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무엇이 규범을 잘 지키는 일이고, 무엇이 위법인지가 혼란스러워져 버린 몇 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이런 장면을 상상 속에서나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여겨왔던 것 같다. 비현실적이어서 너무나 반갑고, 마음이 놓이는 그런 반짝거리는 순간이었다. 자유와 해방감을 누린 그 시간이었다.

실제를 반의 반도 못 담아내지만, 그래도.

나는 타월을 깔고 한참을 누워있었다. 해변가의 커다란 반얀 나무 아래로 비치는 빛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모래사장은 푹신했지만 평평하지 않고 울렁거리는 바닥이었다. 생각만큼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으면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으로 누워 세상을 옆으로 바라보며 관찰했다. 아주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파도와 바람, 햇빛, 이 공간을 채우는 모든 것들이 각자의 속도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보통은 해변가에 오면 수영복을 입고 몸을 푹 담거야만 제대로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오늘부로 좀 달라졌다. 물에 들어가야만 바닷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충분히 즐기고 난 뒤, 물가에서 신발을 벗고,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모래와 밀려드는 부드럽고 얕은 물결과, 살짝 움푹 꺼지는 발바닥의 감촉과 단단함을 느껴 보았다. 바닷물은 어느 시선에서든 최대한으로 반짝거리며 오후의 햇볕을 반사했다. 너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다시 이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해가 점점 기울어지면서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비치를 떠나야만 했다.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또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돌렸다. 

누군가 예쁘게 빚어 놓은 모래 바다거북

어떤 강렬한 좋은 것은 사진으로도, 인위적인 어떤 방식으로도 재현하거나 묘사할 수 없는 것 같아 아쉽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느꼈던 것들, 본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유하고 함께 동일한 것을 느끼고 싶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 글을 쓰면서는 조금 실패한 기분이 든다.

오늘의 일몰까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단언컨대 하와이에서 하루의 여운을 누리는 방법은 일몰을 바라보는 것이다. 색깔을 바꾸어가며 엄청나게 다양한 그러데이션을 이루며 빛의 향연을 이루는데, 움직이는 차 안에서 보면 태양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면서 더더욱 애가 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날의 일몰 빛은 발그레한 블러셔를 칠해가며 얼굴을 치장하는 신부의 모습 같았다. 계속 잠이 들 것 같았는데, 차 안에서 눈이 자꾸 감겼다. 잠깐 졸다가 눈을 뜨면 또 다른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하늘을 보면서 눈이 떠지기도 했다. 그렇게 특별한 이 하루는 서서히 어둠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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