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새로운 결단
솔직히, 나는 내가 이리 회사를 오래 다닐 줄 몰랐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대학교 4년, 그 이후 석사 학위 기간 2년 기간의 교육 시간을 거치는 내내, 나는 단 한 번도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 되어야지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 했던 것 같고, 공부를 싫어하지 않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내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했다. 내가 머물고 있던 곳보다 좀 더 큰 반경, 더 넓은 세계를 원했고, 내가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미래를 꿈꿨다. 나 자신, 다른 사람과 세상을 배우는 일이 재미있었고, 매 순간 진심을 다해 세상을 탐구하고, 나름의 질문과 대답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자유'라는 단어가 내 삶을 멀리멀리 이끌고 가주기를 바라며 꽤 순수한 마음을 품고 살아왔다.
친구따라 강남가듯 연구실 동기의 제안으로 대기업 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브런치북 [3개월의 시간과 1000만원], 그리고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의 배경이 되었다. 어찌되었건, 그 회사는 나와 맞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자연스럽게 이직을 준비해서 도착한 다음 회사가 바로 삼성전자다. 이전 브런치 글들에 담겨있는 회사에 대한 나의 분노와 절망은 반쯤은 이전 회사, 또 나머지 반은 삼성에 대한 것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겠다. 동시에, 나에게 가장 큰 정신적, 물리적인 도전과 성장을 하게 해준 곳은 삼성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좀 닳고 닳은 표현이지만 나는 이제쯤은 이 회사에 '애증'이라는 것을 갖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삼성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축하와 함께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거긴 너랑은 좀 안 맞을 것 같긴한데," 하는 노파심 어린 말도 전해주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고, 그 당시에는 정확히 모르기도 했다. 경력 입사였기 때문에 처음 회사를 다닌다는 설렘이나 두근거림은 거의 없는 상태였고, 삼성 공채 출신들이 갖는 그 단단하고 빛나는 자부심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 것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그저 우습기만 했다. 회사를 퇴사해본 사람 만이 갖는 이상한 뻔뻔함이랄까. 동료들이 타인으로부터의 평가에 대해서 민감해하거나 할 때에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했다. 실제로 그게 회사 밖 한 발짝만 나가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에 대해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일 듯하다. 저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해봤더니 별 거 없던데요. 라는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겠지.
물론 삼성전자 조직 전체는 큰 규모이고, 내가 속한 조직의 특수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 임직원들을 대표할 생각은 없으며, 언급하는 내용들을 일반화할 수는 없음을 인정한다. 그저 내가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 글을 통해 표현하는 게 목적임을 밝힌다.
삼성 사람들은 대체로 상식적이고 괜찮은 사람들이지만, 어떤 면에서 여긴 조금은 이상한 집단이었다.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고, 매사 경쟁하려 하고, 어떻게든 인정을 받고야 말겠다는 갈망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자기 자신과 상대에 대한 기준이 높고, 경제적 여건과 삶의 질에 대한 관심도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든다. 또 대부분 자신의 목표에 따라 성공 경험을 많이 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공이 아닌 대안적 상황을 많이 고려하지는 못하는 편인 것 같다. 그렇기에 어쩌면 해소되지 않은 갈증과 답답함, 혹은 절망감이 더 큰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전부 내 뇌피셜이다. 만족하면서 회사생활을 이어가는 행복한 삼성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 분들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나에게 삼성이 편안한 환경이자, 동시에 덫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3년 정도 근속했을 때였다. 브런치 이전 글들에서 유추 가능한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를 그야말로 회사에 '정뚝떨'하게 만들었다. 그 요인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이 된다.
1) 리더의 불공정한 업무 분배 및 평가
2) 같은 팀 내 동료의 불필요한 핍박과 견제
3) 업무 내 권한 범위가 너무 좁음
나는 이런 상황 가운데서 일을 통해 개인적인 보람을 느낄 수도 없었고, 사회적인 인정을 받을 수도 없었다. 회사에서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수평 인간 관계(동료-나)에서 질적인 지지, 수직 인간 관계(리더-나)에서 양적인 고평가를 받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후자가 충족되지 못하면 업무의 결과로 얻는 보상(진급, 연봉 인상 등)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일의 내용을 얼마나 잘하냐보다는 리더와 합이 얼마나 잘 맞는지, 리더를 얼마나 만족시키는지가 실질적 보상을 위한 가장 주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회사가 제시하는 암묵적인 룰이 싫었다. 당시 리더는 자율출퇴근제라는 제도적 형식 아래에서도 금요일에도 5시전에는 퇴근하지 않기를 바랐으며, 언제나 내가 회사메신저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으며, 일을 티나게 해야 한다고 어필하는 능력도 평가 항목 중 있다고 면담 때마다 강조를 했다. 당시 한 동료는 모두가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대놓고 핀잔을 주거나, 내 개인 업무를 독촉하는 등 끊임없이 눈치를 주곤 했다. 그렇다, 회사는 내가 가장 잘하는 일로 인정받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닌, 자기 이해 관계에 따라 각개전투를 벌이는 전쟁터였던 거였다.
나는 삼성에 속한 내 매일이 불만족스러웠다. 이 회사가 싫었고, 회사의 사람들이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받는 월급뽕과 세상 사람들의 적당히 좋은 인정, 뭐든 적당히 이 생활을 유지하게끔만 주어지는 편안한 환경이 덫처럼 나를 조여왔다. 매일 회사에 출근하면서, 회사에서, 퇴근하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생활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눈 딱 감고 모든 걸 집어던질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다시 눈을 뜨면 현실이 너무 가깝고도 차갑게 살갗으로 느껴졌다. 그 땐 그랬다.
삼성전자는 성과급을 많이 주기로 유명하다. 내 연봉 + 성과급이 최대치로 나올 때를 계산해보면 1년에 얼추 1억 정도 되는 돈이 수입으로 들어온다. 물론 세금과 현실적인 생활로 나가는 지출까지 생각해보면 그 돈을 전부 모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또 그렇다고 삶을 영위하기에 부족한 돈도 아니다. (이 미친 세상에, 집을 소유하는 문제는 별개로 하겠다.)
하지만, 이게 정말 내 삶을 위한 최선일까? 현재의 나는 뭘 위해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을 모으려 하는 걸까. 그 끝에는 '이 생활의 유지'라는 아주 막연하고 피상적인 생존 목표밖에 남지 않는 것이 처절했다. 더 나은 삶이 그려지지 않았고, 조그맣게나마 마음 속에 품었던 꿈은 희미해져 갔다.
삼성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나에게 남는 건 무얼까? 나는 오롯이 나 자신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직은 아니'었다. 그래, 이렇게 이용당할 수만은 없다. 내 안의 마르크스주의가 불끈 솟은 탓인지, 회사를 위한 잉여노동만을 제공하다가 늙어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회사에 이용당하지 말고 회사를 활용하자. 여태까지 잔뜩 내려가있던 내 가드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방어는 공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회사를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저, 휴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