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어찌 저리 말이 통해?
한 해 한 해 직장 생활 경험이 쌓이면서 10년 전의 나에게는 없었던 2가지 습관이 생겼다. 바로 퇴근 후 누워 있기, 그리고 아무 소득 없이 티비 채널 돌리기다. (왜 옛날 우리네 가장들이 퇴근 후 티비만 보고 주말에 잠만 자는지 이백프로 이해가 된다.) 회사를 갔다 오면,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도 이상하게 몸이 늘어지는 탓에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하기가 어려웠다. 육체적으로 피곤한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상황은 같았다. 왜 그런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도 보상 심리를 충족시키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원하지 않더라도 그저 임해야만 하는 강제의 시간들이 있는데, 그 시간의 나는 자유를 뺏긴 채 희생당했다는 인식이 자동 입력된다. 결국 퇴근 후 빈둥거림은 비생산성을 택하더라도, 온전히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시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이다. 라고 합리화가 슬슬 되기 시작했다.
여느 날처럼 재미없는 티비 채널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손가락만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한 채널에 시선이 꽂혔다. 리모컨을 멈추게 한 건 EBS의 세계테마기행. 세련된 편집 대신 왠지 어눌한 듯 소박하게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이 여행 프로그램의 콘셉트가 왠지 맘에 들어, 이전에도 몇 번 시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본 건 어떤 여자분이 내가 모르는 언어로 자유롭게 소통하며, 그 나라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활동을 함께 체험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2022년 하반기 즈음 방영된 중앙아시아 편이었고, 나는 연속해서 두 시간이 넘게 이 회차에 완전히 몰입해 버렸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출연자들이 내가 전혀 모르는 언어로 대화하고 있다는 것과 진행자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도 불구하고 주눅 들거나 불편함 없이 발랄하게 대화를 이어가며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 모르는 언어는 ‘러시아어’였고, 여성 진행자분은 박정은 통역사님이었다. 통역사가 이런 프로그램도 출연하는구나, 그리고 이 분 자체가 참 매력적인 분이구나 라는 인상을 받았다. 살면서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거의 접해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신기하고 멋지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자유롭게 세계 곳곳을 다닐 수 있다니,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 주는 게 소통 능력이라니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날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 꽤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다. 매일 회사에서 고구마 수십 개를 먹는 듯한 시간이 이어지던 어느 날, 도무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날을 다시 쓰자.
가용한 선택지를 만들자!
나 스스로를 점검하기 위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Q. 지금 내 직업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는?
1. 현 직무가 적성에 안 맞음
2. 이 회사의 현 직무를 둘러싼 환경이 안 맞음
3. 회사생활 자체가 안 맞음
그리고 각각의 이유에 맞게 대안을 생각해 봤다.
A1. 직무를 변경해 다른 업무를 해 본다.
A2. 동일 직무로 타 회사로 이직한다.
A3. 프리랜서(혹은 백수)로 전향하기 위한 유니버셜 스킬을 계발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모든 대안을 시도했고 모든 대안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직을 실제로 하진 않았기 때문에 성공이라는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릴 수도 있다. 같은 업계의 여타 기업에 최종 합격했지만 삼성에서의 카드가 아직 몇 장 남아 있었기에 고사했다. 이전 글에서 몇몇 분들이 삼성이 글에 쓰인 만큼 나쁜 회사는 아닌데 너무 부정적으로만 비춰져서 아쉽다는 댓글을 주셨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썼던 것은 긍정 부정 양 쪽으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그중에서도 특별히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부분을 부각했던 것이다. 삼성의 좋은 점이 있다면 지난 역사와 규모로 인해 제도화된 복지 혜택이 다양하다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휴직 제도는 조건에만 부합한다면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편이다.
대안 3번에 해당하는 근본 질문, 나는 삼성을 벗어던지고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은 사실상 오랜 기간 계속 해왔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핵심 가치는 ‘자유’ 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먼저 ‘언어적 제약으로부터 자유’ 로울 필요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장 재미있게 그리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공부가 영어였는데, 그쪽으로 좀 더 발전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은 쭉 해왔었다. 업무를 하는 중에도 뭔가를 더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역시 영어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렇게 대안 1,2를 시도하는 동시에 3번을 실현할 수 있는 영역이 뭘까를 찾아보게 된다. 내 의식의 흐름을 따라 문득 떠오른 그것. 바로 통번역 공부였다. 세계테마기행을 본 날, 박정은 통역사님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다가 J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는 정보를 봤던 게 생각났다. 유레카!
속전속결로 통대 입학에 대해 검색해 봤다. 너무나도 충동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에,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신나서 찾아봤던 것 같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어차피 될지 안될지는 모르는 일인걸 하며 부담이라곤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통대 입시를 위한 학원이 따로 있다는 것, 보통 1년 정도 시험을 준비하는 입시라는 것, 그리고 입학을 위해 재수를 하기도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