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험으로 2년간의 나를 증명할 수 있었을까?
시험을 치르고 난 후 빠르게, 시간은 무료하게 흘러갔다. 흐린 눈으로 달력 날짜를 안보는 척하면서 바쁘게 지냈다.
갑작스럽게 예정했던 날짜보다 이틀 먼저 발표가 났다는 학우의 메시지를 받고 차 안에서 졸시 결과를 열어보게 된 나. 집에서 컴퓨터 딱 켜두고 각잡고 결과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계획대로 잘 안되네 싶다. 모바일 페이지로 살금살금 결과발표 화면으로 들어가 마지막 단계에서 차마 스크롤을 하지 못하는 나. 눈을 질끈 감고 있으니 남편은 자기가 대신 먼저 봐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정중히 그의 제안을 사양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손가락을 굴렸다.
당장 내 눈에 보인 것은 불합격 과목이 있다는 것, 그리고 번역이 올클리어 합격이라는 것이었다. 불합격이 있다고 해도 과락이 아니면 번역 과목으로 졸업시험 합격인 상황이어서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한영순차, 영한동시 불합격을 다시 선명하게 확인하면서, 시험을 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뭔가 크게 실수를 했던걸까? 누락이 많았나? 머릿속이 쌔까맣게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한영순차는 이 브런치북에도 따로 글을 쓴 적이 있을 정도로 계속해서 내가 어려움을 겪던 통역이라 그나마 받아들이기가 쉬웠지만, 영한동시는 끝까지 애정을 갖고 열심히, 그리고 실력 향상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던 과목이라 속이 좀 쓰렸다. 마지막까지 교수님께 상담도 받으며 늘 애썼고, 정말 잘하고 싶었고, 앞으로 커리어를 이어간다면 영한 동시 통역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기에 발표 이후로도 계속해서 불합격이라는 글자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예상을 뒤엎었던 영한 순차나, 확신없었던 한영동시를 합격한 것도 이유를 정확히 분석할수는 없는 것이기에, 겸손하게, 서서히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다.
역시 번역과 유사한 업무를 했었기 때문에 나는 번역을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번역 수업을 들을때나 과제를 할 때, 또 시험을 칠 때에도 크게 긴장하지 않고 즐겁게 몰입하면서 했던 장면들도 떠올랐다. 반면, 통역은 거의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늘 긴장되고 위축되어 기세좋은 퍼포먼스를 낸다는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 그 시간을 버텨내고 이겨낸 나에게 자축을 해야만 한다! 계속해서 이렇게 주문을 외우면서도, 마음 한켠엔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이런저런 마음을 담아서 한 교수님께 메일을 썼다. 그런데 그 교수님의 사려깊은 답장 한 구절이 나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을 사악 녹여주었다.
"...어떤 단서도 달지 않고 축하합니다. 중요한 관문을 하나 넘어섰어요.
물론 개인적으로 아쉬움도 남겠지만, 그래도 여덟 과목 전체에서 고른 성적을 거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2년 간 잘 버티고 싸워준 나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안스러워 하는 마음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 왠지모르게 안심됐다. 그래, 어떠한 단서도 달지 않고 스스로 잘했다고 말해주는 것.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성실함과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가끔은 이런게 너무나 어렵기도 하다. 언젠가는 내 마음 속 이런 류의 실망이 '완벽주의'같은 것으로 불렸었고, 또 '과몰입'이라고 치부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잘 해낸 것이고,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기쁨을 누리자.
그리고 나 스스로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조금씩 더 채워나갈 여지가 있다는 피드백으로 수용하자. 그러면 또 조금씩 더 나아지고 발전할 수 있을테니까. 나는 또 즐겁게 그 과정을 해나갈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졸업시험 결과는 비공개인데다가 다들 조심스럽고 예민한 주제라, 쉽사리 학우들에게 연락할 수가 없는 기간이다. 조금 희한스럽긴하지만, 그래서 본인이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이상, 학위수여식 날이 되어봐야 누가 합격을 했고 합격을 하지 못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졸업시험을 치고, 결과를 받아보니 비로소 더 절감하게 되는 것 하나가 있었다. 통번역 공부, 통번역대학원 과정은 그 누구와의 경쟁도, 비교도 아닌, 더 나아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 스스로와의 실력겨루기에만 감정을 쏟아도 충분하다는 것. 불필요한 견제와 부정 감정에 쏟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단단히 세워가는 것에 목표가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2년간을 통해 배운 레슨이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외쳐보겠다.
여러분, 저 졸업시험 합격했어요!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