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 모두 소중하니까
중간고사를 찜찜하게 말아먹고, 온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무엇보다 음성 파일로 영원히 박제되버린 망해버린 내 통역을 다시 들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시 듣고, 당당하게 빨리 털어버리고라도 싶었을텐데. 상황을 있는그대로 마주하지도 못하고 회피하고 있는 내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그냥 이대로 뭉개 보기로 했다. 정말 나답지 않는 선택이었고 슬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겠지. 이별 당한 사람 마냥.. 스스로를 다독였다.
학교에 가니 예상대로 학우들은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며 각자 나름의 심정을 토로했다. 백트래킹을 많이 했다, 시험 문제가 별로였던 것 같다 등 너스레일 수도 진심일 수도 있는 시험에 대한 의견들이 오갔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통역을 여기서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반쯤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은 폭풍우가 치고 있었던 시점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번역 수업 시간이었다. 보통 번역 수업에서는 수업 시간 내 작성해서 제출하는 인클래스 과제와 수업이 끝난 후 다음 시간 전까지 제출하는 일반 과제가 있다. 수업에 따라서, 주차에 따라서 인클래스과제, 일반 과제 중 하나 혹은 둘 모두 과제로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이 수업은 인클래스 과제를 수행한 뒤 차주에 인클래스 과제에 대한 피드백과 복기를 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 날은 수업에 들어가니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교수님께서 프린트물을 한 장씩 나눠주시는 거다. 무심코 들여다 본 종이에는 앞 뒤로 한 명씩 총 두 개의 샘플 번역 글이 실려 있었다. 근데 자세히보니 그 두 명 중 한 명의 이름이 바로 내 이름이었다.
???!?
통대에 와서 수학을 해보니, 우리 학교 교수님들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겠고, 학생들의 심리적인 이슈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퍼포먼스가 뛰어난 학생을 공개적으로 스포트라이팅하는 것을 지양하는 분위기다. 통역은 수업 시간에도 플로어에서 공개적으로 퍼포먼스를 한다는 점에서 타인의 평가를 피해갈 수는 없지만, 번역 결과물의 경우는 대부분 번역자의 아이덴티티는 지우고 내용에 대해서만 코멘트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교수님의 선택은 생소했고, 모두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엊그제까지만 해도 이 길이 나랑 맞지도 않고, 잘 해내고 있지도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였는데. 같은 시점에 또 한편으로는 수십명의 학생 중 번역을 잘한 글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죽상하고 있는 나한테 누군가 저 높이 하늘에서 위로의 선물이라도 내려주는 건가? 싶었다.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들뜨고 우쭐한 감정이 든 게 아니라, 번역을 하면서 의도했던 바를 교수님이 알아차리셨고, 그 부분을 잘했다고 피드백 때 짚어주셔서 나라는 사람을 이해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그거면 충분했던 것 같다. 적어도 이것만이라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을 수 있게 됐다.
뒤죽박죽 엉망인 기분에 한 방울의 힐링 포션을 뿌린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뒤로 며칠을 원래 해오던 루틴에만 집중했다.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고. 딱히 다른 것을 할 수도 없었다. 통대 2학년생으로서 오래 딴짓해봐야 하루 이틀이 최대치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 완전히 마음을 놓아버리면 다시 on track 하기가 만만치가 않음을 이미 알기에,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마냥 배짱 부릴 수도 없다. 감정이 태도와 생활이 되면 안되는 정말 무시무시한 세계다.
아무튼 그렇게 한 주치의 모든 해야 할 일이 끝나고, 조금씩 상한 마음도 무뎌져 갔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아직 내가 해결하지 못한 게 남아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시험 파일을 들어봐야만 했다.
수주, 수달이 지난 것도 아니고 고작 열흘 조금 더 지난 시점이었지만 이제는 들어볼 마음의 정리가 되어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건 그냥 수많은 시험 중 하나였고, 사실 난 이전에도 수없이 실패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수없이 실패할 것이기에. 바뀌는 것은 없다. 이어폰을 끼고 조심스레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안간힘을 쓰는 내가 들렸다. 생각외로 괜찮은 부분도, 생각대로 안 풀려서 끙끙대는 마음이 문장을 이어나가는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이었던가?
나는 이제 이 공부를 시작한지 1년 조금 넘은 사람이다. 작년 3월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진 아예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1학년 1학기 첫 통역 시험이 생각이 났다. 그 땐 내가 원하는 대로 뱉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아마 의도한 것의 반도 말을 못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터무니없는 높은 기대감이 우습고 짠하게 느껴진다. 절망에 빠져 브런치에 글도 남겼지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미루고 피하며 두려워하던 실체를 직면해 보니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냥 내가 딱 할 수 있는 만큼을 한 것. 그게 그 날의 일이었을 뿐.
"일희일비하면 안된다"라는 말을 사람들이 흔히 한다.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감정의 균형을 잡고, 겸손하고 일관된 태도로 모든 일에 임하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일희일비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번역 공부의 특성이 워낙 자학적이고, 자존감을 깎아먹기가 쉬워서일 수도 있다. 정말 아주 작은 성공의 경험조차도 희소한 것이 통번역 공부라고 자부할 수 있다. 기쁨 때문에 상대적 슬픔이 더 처절하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자주 찾아오지 않는 성공과 짜릿한 행복을 희생시키기엔 인생에 비(悲)가 내리는 날이 너무나 많다. 비가 오면 또 어떤가, 좀 맞고 찌질거리면 될 일.
회피하고 싶으면, 잠깐은 덮어두고 모른 척 놔둬도 괜찮다.
충분히 즐기고 싶다면 맘껏 기뻐하며 자부심을 누려도 좋다.
견딜 수 없이 슬프고 외롭다면 엉엉 울어도 잘못이 아니다.
이런 시간을 지나면서, 언젠가는 자기 자신과 아주 솔직한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어느 래퍼의 말이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다. 때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나 자신도 타인처럼 대하게 될 때가 있다. 내게 있어 나이 들어감이란 뭐든 잘하는 것, 늘 성공만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잘 대해주고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정의하고 싶다.
덧붙임. 두서 없이 감정을 토해낸 글에 말없이 라이킷으로 공감 응원 위로해 주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