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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수 Mar 31. 2020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_야간비행

책을읽고_02

날개들은 저녁 미풍에 떨고 있었다

엔진의 노랫소리가 잠든 영혼을 달랬다

태양은 창백한 빛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열두 살 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된 생텍쥐페리가 비행기에 대한 마음을 담아 쓴 시이다.

평온함이 전해지는 이 시구에서 노을 진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를 그려보는 그의 모습이 연상된다.  


도입부의 줄글을 따라서 비행기를 타고 창 밖의 불 켜진 도시들을 내려다보며 검은 바다같이 어두운 적막 속에서 작은 마을과 헛간들을 지나쳤다. 밤의 고요에서부터 전해지는 고독과 약간의 우울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를 책 속의 시간으로 인도했다. 단숨에 읽어버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얼마 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공전과 자전처럼 세상이 굴러가는 힘과 내가 나아가는(살아가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거나 급여를 받고 일을 해야 해서 매일 계획을 세워 하루하루를 보냈던 날들에는 별로 떠오르지 않는 생각들이기도 하다.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내가 걷던 길이 갑자기 절벽이 되어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평생 이 일을 업으로 삼으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던 직장의 계약이 끝나 (나만 아쉬운) 마지막 인사를 받고 집에서 내일은 뭘 해야 하지 고민했을 때, 영화 작업을 하다 도저히 진행해 나갈 힘이 사라져 버린 느낌에 모든 것을 엎어버렸을 때, 사랑을 억지로 부정하고 떠나보내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했을 때 등등. 내가 태어난 1일째로 시간을 돌려버리고 싶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며 내 안의 시간이 세어보내기도 했다.

"이보게, 로비노, 인생에 해결책이란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힘뿐.
그 힘을 만들어내면 해결책은 뒤따라온다네."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다시 본 적이 있었다. 그 영화에서 아빠 물고기 말린은 사라진 아들 물고기 니모를 데려간 인간의 집주소가 적힌 수경을 가지고 다니다가 실수로 빛이 닿지 않는 해저 밑바닥으로 그것을 떨어뜨린다. 말린은 절규한다. 열대어가 해저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위기에 말린과 함께 있던 여자 물고기 도리는 지금 무슨 문제 있냐는 듯 "just keep swimming"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말린을 어둠속으로 이끈다. 계속 헤엄쳐, 계속 헤엄쳐. 그 노래는 몇 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 소설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고 흐린 기억 속에서 그 메세지를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당시의 불안했던 시간들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현재 그러한 고민들 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있는 것을 보면 내가 그때 계속 앞으로 헤엄쳐나갔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식의 다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잊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다시 이야기해본다. 이 곳이 바다인지 땅인지, 하늘 위인지 동굴 속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사방이 어둑하고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 핸들을 꼭 잡고 놓치지 않는 파비앵처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무력히 있기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리비에르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지. 그렇게 어둠을 벗어나는 순간을 마주하여 다시 한번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느껴야지.



23.p

    그렇지만 그가 항상 의도적으로 멀리해왔던 모든 감미로운 것들이 우울하게 속삭이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잃어버린 대양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토록 가까이에 있었던가?......' 그는 자신이 노년에 이를 때까지, 인생을 감미롭게 해 줄 모든 것들을 '시간이 생기면'이라는 전제로 조금씩 미뤄왔음을 깨달았다. 실제로 언젠가는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처럼, 인생의 끝자락에서는 상상해 온 행복한 평화를 얻게 될 것처럼. 그러나 평화는 없다. 어쩌면 승리도 없을 것이다. 모든 우편기가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날이란 오지 않는다.


52.p

    그는 어디선가 야근하는 직원 한 명을 만나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밤에도 일을 하고 있기에 삶이 지속되고 의지가 지속될 수 있으며, 툴루즈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기항지에서 기항지로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54.p

    두 대의 우편기가 비행 중 일 때, 외부에서 걸려오는 밤의 전화는 얼마나 위협적인가? 리비에르는 저녁에 불빛 아래 모인 가족들에게 충격을 줄 전보와 몇 초가 거의 영원처럼 느껴질 시간 동안 아버지의 얼굴에 비밀로 남는 불행을 생각했다. 질러대는 외침과는 거리가 먼, 너무도 조용하고 힘없는 파동이다. 매번, 그는 이 띄엄띄엄 울리는 전화벨 속에서 희미한 메아리를 들었다. 매번, 당직 직원은 마치 대양을 헤엄치는 사람처럼 고독에 빠져 느리게 움직였고, 물속에서 수면을 향해 되올라오는 잠수부처럼 어둠 속에서 불빛을 향해 다가왔는데, 리비에르에게는 그것이 무거운 비밀을 짊어진 듯한 몸짓으로 보였다.


66.p

    "날씨가 좋아, 당신 가는 길에 별이 쫙 깔렸어."


76.p

    파비앵은 이런 혹독한 밤을 보낸 후 이르게 될 새벽을 황금빛 모래사장인 양 꿈꿨다. 위협받고 있는 비행기 아래로 들판이 해변처럼 펼쳐지겠지. 조용한 대지는 잠든 농가와 가축떼와 언덕을 품고 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 떠다니는 모든 부유물도 위험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새벽을 향해 헤엄쳐가련만!

    그는 자신이 포위되었다고 생각했다. 잘되든 못되든, 어쨌든 이 짙은 어둠 속에서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정말이다. 그는 이따금 날이 밝아올 때면 회복기에 들어선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해가 떠오를 동쪽을 뚫어져라 본들 무슨 소용인가. 그들 사이에는 너무도 깊은 밤이 있어 그것을 뚫고 다시 올라가지 못할 테니 말이다.


106.p

    '영원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행동과 사물이 갑자기 그 의미를 잃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거지. 그런 때 우리를 둘러싼 공허가 모습을 드러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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