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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수 Apr 01. 2020

김애란_바깥은 여름

책을읽고_03

다른 계절로 넘어가지 못하는, 다른 시공으로 건너가지 못하는 인물들 이야기

안과 바깥의 온도 차가 있을 때 이슬이 맺히고 얼룩이 지는 '결로' 현상이 가슴팍에도 생긴다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인터뷰에서.


2017년 여름, 애란님의 신작이 나왔을 때 서점에 달려가 직접 구매를 했다. 웃는 모습을 한 채 책을 들고 사진도 찍어 두었다. 그 사진은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꺼내보아도 환하고 행복해보인다. 다른 책들도 그러하지만 유독 애란님의 책을 읽는 것은 김애란 작가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어떠한 체험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 경험을 하고 나면 읽지 않은 시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한다.


이 책의 인물들은 상실의 상황 앞에 놓여져 각자의 방식으로 감내하고 슬퍼하고 고민한다. 모두 다르게 흘러가는 상실과 회복의 시간 앞에서 이만하면 됐다며 그 시간을 한정짓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힘들지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성숙한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물들이 지닌 감정에 대한 묘사는 인물의 행동이나 어떤 물건을 바라보고 떠오르는 감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겉으로 분출된 것의 색감이나 흔적의 모양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적절한 생략과 플롯의 나열은 읽는 자로 하여금 그 세계에 머무는 시간을 더 연장시킨다.


처음으로 이야기를 쓰는 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내가 서툴게 써내려 간 짧은 글을 보고 나서 추천해주신 책이 김애란 작가의 <침이 고인다> 였다. 당시에는 그 책에 담긴 인물들의 감정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단지 그 종이에 적힌 문체들이 나에게 깊은 영감을 주기도 하였으며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간혹 문장이 잔인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을 보내고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나서 다시 읽었을 때 그 책은 세월을 겪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새롭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애란님의 소설은 꼭 다 같이 이파리를 피워야할 시기에 그렇지 못한 몇몇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고 나 또한 그 옆에서 같이 꽃을 피우지 못한 한 그루의 나무같고 생각했다.


여전히 어린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탓인지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 출간되는 애란님의 책을 좋아하고 구매한다. 가끔 낭독회에선 내가 읽었던 책의 목소리와는 조금 다르게 귀여운 느낌이 베어있는 톤으로 책을 낭독해주시기도 한다. 그리고 가만히 애란님의 글을 보다보면 그 안에 살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내가 그것이 될 순 없지만 문장에 최대한 가까이 가고 싶어 노트에 <바깥은 여름> 의 '입동','풍경의 쓸모'를 필사했다.

(아래에 적어 둘 문장들을 많이 고르지 못했다. 내가 적고 싶은 글들을 다 적고나면 책을 모두 필사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45.p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나, 그런건 다 어디로 가나.

 - 노찬성과 에반


173.p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 풍경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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