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읽고_04
소설 보다 봄 : 2020_첫번째 단편 소설
'나'가 매번 확인하게 되는 '너'라는 사람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며, 결코 '나'가 다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너'라는 사람에게 '나'는 점점 더 속수무책이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3구역, 1구역 김혜진X강동호 인터뷰에서
재개발 구역에 새입자로 사는 '나'가 길고양이를 돌보다 우연히 같은 고양이를 챙기던 부동산 업자인 '너'를 만나는 40페이지 남짓의 짧은 소설이다. '나'와 '너'의 캐릭터를 단면적으로 다루지 않고 사람과 환경이 가진 모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재개발 구역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누군가에 대한 관심과 호감. 그런 감정이 점점 커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관심이 생길 때 느끼게 되는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사람을 판단하게 될 때 선과 악으로 판단하기보단 도덕과 윤리의 문제 안에서 고민해야 하는 일들이 더 많다는 말에 공감한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쉽게 착하다, 나쁘다 라고 단정지어 말하기 애매한 순간들이 많다. 소설의 '너'처럼 길고양이에 대한 선행에 진심을 다하기도 하면서 부동산 투기에 거리낌없고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여기기도 하는 모습은 착하 나쁘다고 표현하기엔 보다 더 디테일한 것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규정지어지지 않기 때문에 모순적이면서도 모호하게 느껴졌던 것은 '너'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에서 또한 나타난다. 사랑처럼 확실한 단어 이전의 호감이라는 감정의 원인을 찾는 일에 대한 고민이 느껴졌다.
단편적인 캐릭터들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좋았으나 일관적으로 애매한 느낌을 가져갔던 것이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읽고 조금 찝찝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소설의 역할이 때로는 추상적으로 느껴진다고 인터뷰한 것이 이유가 되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어디로 향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기게 되고, 나에게 생긴 호감이라는 감정을 경계하다가 상대의 이중적인 모습을 몰래 훔쳐본 것 마냥 발견해 버리다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끝나버리는 소설의 진행이 슬프게도 공감이 가고 내가 겪었던 어떠한 상황과 비슷해 삶의 정답을 소설에서 찾으려고 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22.p
듣다 보면 너는 나보다 일곱 살이 어린 게 아니라, 일곱 살이 많은 사람처럼 느껴졌고, 내가 결코 경험할 수 없고, 경험할 리 없는 일들을 보고 듣고 겪은 사람처럼 보였다.
37.p
너는 길고양이를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고 요령 있게 집을 사고 팔며 차익을 남길 줄 아는 사람이고 내게 아무런 경계심 없이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고, 누구나 관심 있어 하고 궁금해할 정보를 대가 없이 공유하는 사람이고, 낡고 오래된 것들은 말끔히 부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몇 날 며칠씩 오지 않는 고양이를 기다리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결코 내가 다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도 너라는 사람을 다 알 수는 없겠구나. 너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하든 그것은 어김없이 비켜나고 어긋나고 말겠구나.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필사적으로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너를 지켜보는 동안 나를 사로잡은 건 그런 예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