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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수 Apr 24. 2020

정통요가를 배워보기로 했다

아쉬탕가 요가 첫날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누군가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기도 하고 전에 다니던 직장으로부터 이직을 하게 되기도 하는 이 시기에 홀로 무언가를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중이었다. 어제는 평소 우울해하던 시간에서 조금 벗어나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일단 몸부터 움직여보자 라는 마음으로 아쉬탕가 요가원으로 차를 끌고 갔다. 어제의 상황에서만 보았을 때 그것은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하기 전 잠깐 일을 했을 때에 가끔 필라테스를 다니기도 했었고 정통요가를 언젠가는 배워 내 몸에 익혀두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의 뿌리는 중학교 1학년 때 동아리 활동으로 요가 수업을 들으며 친구들과 꺄르르 대던 좋은 추억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요가원의 원장님은 근육이 다부진 몸에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지신 남자분이셨다. 사실 아쉬탕가 요가를 검색해보면서 넷플리스 다큐멘터리 '비크람'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먹었었다. (비크람 요가를 창시한 한 남자가 지도자 과정의 여자 수강생들을 성폭행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사실 어딘가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졌었다 해서 내가 그것을 절대 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되진 않지만 그런 케이스에 대한 염려와 경계는 이미 오래도록 굳어진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여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어쨌든 정통요가를 배우고 싶었던 나는 요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 중에서 남자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 원장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옆에서 숙지한다는 느낌으로 보고 따라 해 보시면 돼요


첫날 요가원의 사람들을 보고 수련자들의 어떤 에너지 같은 것을 느꼈다. 아직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내 옆의 한 남자는 파란 수건으로 구슬땀을 연신 닦아내며 동작을 수행해내려 열심히였고 앞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는 세명의 언니들은 자신들의 몸을 접고, 늘이고, 휘게 하고, 들고 멈추는 동작에 매우 유연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요가 템포에 수업 전 알려주신 방식은 모두 까먹고 정신없이 따라 하다 보니 이게 홈트레이닝인지 요가 수련원인지 분간이 잘 안되었고 허우적 대는 내가 당연히 눈에 띄었던 것인지 원장님이 옆에 서서 차분히 다시 동작을 가르쳐주셨다. 한참을 또 따라 하다 다리를 안은 한 손을 뒤로 꺾어서 다른 쪽 손과 마주 잡는 어떤 동작이 있었다. 나는 필라테스를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길 좋아했지만 이런 동작은 내 몸으로 해낼 수 없는 거라 생각했었고 나도 모르게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을 짓다가 원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원장님이 조용히 다가와서 내 팔을 꺾고 다른 손을 당겨와 손을 마주 잡을 수 있게 해 주셨다. 뭔가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일은 사실 가능하다고 이야기해주시는 것 같았다.


한 시간의 요가 수행이 끝나고 마무리는 매트 위에서 가만히 틀어주시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의 잠깐 했던 요가 동아리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호흡 정리 시간에 개운하게 꿀잠을 자거나 저도 모르게 코를 골기도 해서 구령에 맞춰 눈을 먼저 뜬 친구들이 숨죽여 웃으며 지켜보다가 몸을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눈을 감고 누워있으니 그때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이번에는 다행히도 잠들지 않았는데 마치 단잠을 자고 난 것처럼 개운했다.


요가를 마치고 5명의 사람이 테이블 앞에 앉아서 시나몬 향이 그윽한 차를 나눠 마시며 얘기를 잠시 나누고 헤어졌다. 아침에 몸을 좀 움직인 것이 더 도움이 되었는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며 웃었던 시간이 더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요즘 아침은 어두운 밤 같았는데 마찬가지로 그랬던 어제와는 다른 아침을 맞게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고 가끔 깊게 빠지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기기도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고 조금이라도 사람들과 입을 열어 말을 나누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소중한 것 같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홀로 동작을 수행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깊은 요가를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더욱 추천하고 싶다! 첫날에 추천이라니 스스로가 가소롭게 느껴지지만 오늘부로 앞으로도 정통요가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알려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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