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못 가겠다고?
여행자의 바른 자세 같은 것은 없다. 지침도 매뉴얼도 없다. 당연히 모범이 될 만한 사례집도 없다. 있는 것 같아도 그것은 다 그것을 만든 개인의 맥락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면 나만의 여행도 결국은 남 같은 여행이 되고 만다. 블로그를 찾고 안내 책자에 줄을 쳐가며 공부를 한다. 먼저 간 선배들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안전하다. 어느 정도의 만족이 보장되어 있다. 여행은 일상의 익숙함을 잠시 뒤로 두고 낯선 것을 당연하고 유쾌한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여정이다. 공기의 결부터 다른 여행지에서는 음식도, 사람도, 분위기도 다르다. 낯선 것 투성이어서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그 낯섦을 즐기는 사람들은 수시로 여행을 떠난다. 자극 없는 일상을 지루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아내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해외여행. 낯섦의 크기가 국내보다 몇 배로 달라지는 스트레스를 경험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물질적 비용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하긴, 놀이공원에 가면 즐거우니 돈을 내고, 회사일은 대체로 출근 때부터 재미없는 스트레스의 연속이니 그에 합당한 돈을 받는다. 회사에서 요즘 재미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농반진반으로 재미있으면 돈을 내고 다니라고 하는 이유다. 재미없는 여행에 쓰는 돈이 아깝다는 반응은 매우 당연하고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아내에게 해외여행 가자고 제안을 할 때마다 거절을 당하곤 해외여행은 잠시 접어두고 살았다.
‘공짜 여행이잖아.’
‘그래도 안 돼. 방송에 출연한다며, 그것도 공중파. 나는 안 돼.’
‘추가로 선정된 거야. 간다고 얘기했는데 어떻게 해.’
‘그럼 자기 혼자 가. 암튼 그리 알아.’
메시지를 하게 되면 말로 하는 것보다 좋은 감정은 반감되고 냉담함은 증폭된다. 아내의 거절은 예상보다 훨씬 단호하고 싸늘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내의 벽에 막히다니. 대책을 세워야 했다. 공짜라는 것도 안 먹히니 큰일이었다. 아내 입장에서는 돈이 나가지는 않더라도 본인의 얼굴이 방송에 나가는 것이고 촬영 때문에 번거로울 것이 뻔하니 따지고 보면 비용이 안 드는 것이 아니라는 셈법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아내와 오로라 여행을 꼭 가고 싶었다.
아이들의 모습은 사진으로도 남기고 영상으로도 기록한다. 물론 영상은 대개 학교 들어가기 전이지만. 어른들의 사진은 더러 있어도 영상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몇 해 전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부모님을 촬영한 적이 있었다. 시골에 사는 부모님을 위해 아들이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방송인이 찾아가서 들어주는 내용의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더운 여름 참외밭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안타까워서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김천까지 제작진이 내려가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장면을 찍었고 10분 남짓한 영상으로 남았다. 부모님은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좋아하셨다. 방송에서 아버지는 땀 흘리며 일도 하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시고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몇 해 뒤 아버지는 위암 진단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지 2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다시 그 영상을 틀어보진 못했다. 그래도 언젠간 마음의 상처가 아물었을 때 꺼내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두면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겠냐는 말을 준비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내다. 아이다. 캐나다. 내 전에 갔던 데 안 있나? 밴쿠버는 아이고 더 위로 올라가야 된다. 억수로 춥다 카더라. 박서방하고 둘이 가지. 아가들은 안 간다. 공짜라 캤잖아. 박서방이 사연을 응모했다 카더라. 내가 옛날부터 오로라 보러 가고 싶다 캤거든…”
너도 좋았구나. 처음부터 숨기지 말지 그랬어. 괜히 마음만 졸였잖아. 이 야속한 사람아.
그 뒤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유효기한이 만료된 여권을 새로 발급받고 캐나다 입국을 위한 eTA도 신청했다. 오로라 공부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이건 안 하는 것이 더 나았다는 것을 현지에서 알게 되었지만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오로라를 보러 가는데 머리를 비우고 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갔을 때 더 놀랍고 감동적일 텐데 그걸 실천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출연자답게 국내 촬영분도 있었다. 출연자의 사연과 삶에 대한 장면이 필요해서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촬영이 이어졌다. 여의도에 근무하는 금융인의 바쁜 일상이 화면에 담겼고, 연애시절 우리의 추억은 수백 통의 연애편지와 함께 소환되었다. 오로라를 꼭 봐야 할 이유가 카메라에 한 장면 두 장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