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시골 동네 황도시(黃刀市) Yellowknife
장시간의 탑승과 강행군에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몇 시인지도 모를 정도까지 푹 잤다. 동지가 가까워 와서인지 해는 뜨는 둥 마는 둥 했고 시계를 보고서야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을 것이 뻔했지만 옐로나이프의 낮풍경이 궁금했다. 첫날 오후라 단체로 옐로나이프 시내 관광 일정이 잡혀 있다. 옐로나이프는 인구 2만 명 남짓이다. 우리나라의 작은 군 정도의 인구 수준이다. 노스웨스트 준주(Northwest Territories, 주는 아니고 주보다 작은 자치지구를 준주라고 부른다고 한다.)의 주도이자 유일한 도시다. 구글 지도에서 보면 주변에서 옐로나이프 말고 다른 도시를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이 도시를 이루어 모여서 살 수 있는 가장 북단이 이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척박해 보이는 곳이다. 그레이트 슬레이브호(Great Slave Lake) 연안에 터를 잡고 있다. Slave는 선주민의 언어로 크다라는 뜻이라니 그레이트 슬레이브는 위대한 노예가 아니라 거대하고 거대하다는 뜻이다. 남한 면적의 3분의 1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불과 400km만 가면 북극권이다.
옐로나이프라는 이름은 한때 Copper Indians 또는 Yellowknife Indians라고 불렸던 데네(Dene)족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구리가 많은 지역이라 선주민들은 노란색이 나는 구리제품을 만들어 썼다. 원래는 Aboriginal 또는 First Nation이라고 부르는 선주민들이 살던 곳이었다. 원주민 또는 Native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그 말에 차별적인 뜻이 담겨있어서라고 한다. 선주민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처음 들어봤다. 에스키모 대신에 이누이트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1930년대 금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1960년 말 금 채굴량이 떨어지면서 행정타운이 되었다. 1991년에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면서 다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보기와는 달리 1인당 소득은 캐나다 전체 평균의 1.5배 정도로 6만 불이 훨씬 넘는다. 도시로서의 역사는 채 100년이 안 된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 작은 도시는 올드타운과 다운타운으로 구분되어 있다. 시내 관광이라고 해도 차로 돌면 30분 정도면 끝이다. 다운타운은 우리나라 읍내처럼 작고 아담해서 걸어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자연환경이 척박하면 저절로 검소해지고 삶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것만 갖추게 되는 것처럼 거리의 상점들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기에 꼭 필요한 것들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흔한 스타벅스 하나 없었고 커피를 전문적으로 파는 카페는 찾기 힘들었다. 다운타운에서는 주의회의사당, Prince of Wales Northern Heritage Centre가 볼 만했다. 주의회의사당은 아연으로 만든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의사당 내부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자연 앞에서의 겸손, 선주민의 역사, 문화, 전통에 대한 존중, 선주민과 이주민의 조화가 곳곳에 상징으로 녹아 있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캐나다의 모델을 앞으로의 대안으로 모색하는 기사를 낸 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캐나다 모델이 지닌 가치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해 보았다. 직업이 왕세자인 찰스 왕세자가 다녀간 기념으로 지은 Prince of Wales Northern Heritage Centre에는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전혀 다른 나라 같아도 영국을 대하는 캐나다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박물관 내부엔 찰스님과 무관하게 선주민의 삶과 옐로나이프의 역사가 잘 녹아 있는 전시물로 가득했다. 단단한 암반 지대인 데다 겨울이면 동토로 변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안하고 만들어낸 유물들은 그 역사가 길지 않았어도 숙연케 했다. 선주민에 대한 존경심의 마음을 한껏 담아 안내 데스크에 있는 선주민에게 박물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건네며 선주민으로서의 삶이 어떠냐고 물었다. 빙그레 웃으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I’m a Filipino.” 안목 하고는. 선주민 아내와 결혼해서 11년째 옐로나이프에서 살고 있단다. 옐로나이프 전체 인구 중에서 3%가 이민자인데 그중에서 36%가 필리핀 사람이고 그다음은 18%를 차지하는 가나사람이다. 어쭙잖은 산수를 해보면 100명 중에 한 명은 필리핀 사람. “I’m sorry.”라고는 했지만 그 미안한 마음의 대상이 필리피노 아저씨였는지 선주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YK센터는 다른 볼거리는 없고 바깥에 날짜와 시간, 기온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하나 있다. 옐로나이프가 얼마나 추운지를 실증할 수 있는 인증샷을 찍는 성지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옐로나이프 여행자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옐로나이프가 얼마나 추운지 알아? 콧물이 나오자마자 인중에서 얼어버려. 젖은 빨래를 던지면 받을 때 이미 얼어 있다니까. 밖에서는 절대 오줌 눌 생각하지 말아, 어떻게 될지도 몰라.’라고 하는 도무지 믿기 힘든 너스레에 비하면 “-30℃”와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만 한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스마트폰 꺼내서 척하고 보여주기면 하면 끝인데 나는 그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해서 저런 허세를 여전히 떨고 다닌다. 남극이나 북극 다녀온 사람만 만나지 않으면 된다.
80년 정도의 귀여운 역사를 자랑하는 올드타운에도 볼거리가 몇 군데 있다. 아마도 사방 몇 킬로미터 안에서 고도가 가장 높을 것으로 짐작되는 올드타운의 언덕 꼭대기에는 부시 파일럿 모뉴먼트(Bush Pilot Monument)가 있다. 부시 대통령 가문의 조종사가 아닌 부시 파일럿은 말 그대로 숲 속의 조종사라는 뜻이다. 사방팔방 천지에 호수 아니면 숲뿐인 지역을 오가는 교통수단은 경비행기뿐인데 특히 캐나다 서북부, 알래스카, 호주 일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종사들을 부시 파일럿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하루에도 수십대의 항공사 비행기가 옐로나이프 공항에서 뜨고 내리지만 과거에는 부시 파일럿의 존재가 옐로나이프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했을까? 옐로나이프의 올드타운과 다운타운 전체가 다 내려다 보이는 그곳에 그들을 기리는 기념탑이 서 있다. 그레이트 슬레이브 호수와 함께 옐로나이프 전체를 조망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을 없을 것이다. 자유시간이 주어졌을 때 아내와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바로 부시 파일럿 모뉴먼트였다. 감상도 잠시, 너무 추워서 곧장 내려와야 했지만. 언 호수 위에 쌓인 눈과 수상가옥, 아기자기한 옐로나이프의 올드타운, 상대적으로 빌딩숲처럼 보였던 다운타운, 그리고 아득한 지평선을 보는 것은 짧지만 강렬했다.
올드타운에서는 노스웨스트 준주의 낮은 부가세율 덕분에 캐나다 구스와 방한용품을 비교적 싸게 살 수 있는 Weaver & Devore, 선주민 공예품을 비롯한 기념품을 파는 Gallery of Midnight Sun에도 들렀다. 기념품의 대부분은 갤러리오브미드나잇선에서 샀는데 오로라 강도를 표시하는 등대 때문에 생각보다 별 것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주저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옐로나이프 올드타운의 백미는 그 이름도 망측한 Ragged Ass Road이다. 민망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그대로 옮겨 보자면, ‘너덜너덜한 똥꼬길’ 쯤 된다. 너덜너덜한 똥꼬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Ragged Ass는 ‘형편없다, 미숙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길이가 겨우 150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그 비하인드 스토리는 재미있고 논쟁적이다.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1930년대 골드 러시 이후 광산 노동자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는데 광산 경기가 휘청거리면서 노동자들의 삶도 피폐해졌고 엉덩이 부분이 해진 그들의 바지가 어려운 시절의 상징처럼 되면서 거리의 이름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한다. 거리 이름치고는 상스럽고 이례적인 내용이 재미있어 세계인의 만물박사 위키피디아에 답을 청해 보았더니 가이드의 설명이 조금은 맞고 많이 틀렸다. 원래 이곳은 화장실이 많아서 변소길이라는 뜻의 Privy Road로 불렸다. 광산업자 Lou Rocher라는 사람이 이 지역의 건물 아홉 채 가운데 여섯 채를 소유할 정도로 부유했는데 1970년에는 채굴량이 줄어서 경기가 좋지 않았었나 보다. 1970년 어느 밤에 광산업을 하는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농담 삼아 똥구멍이 찢어질 만큼 형편없이 망했으니(Ragged ass broke) 도로를 Ragged Ass Road라고 불러야 해야 한다고 하고 그날밤 바로 표지판을 세웠다. 이 기발한(!) 작명을 주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기까지 40년이 넘게 걸렸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Red Rider라는 그룹은 동명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Ragged Ass Road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은 캐나다인에게 가족친화적인 정책을 자랑하는 Westjet 항공사의 기내에서 그 옷을 못 입게 한 것이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단다. Rocher 씨가 세워 놓은 이 희귀한 도로표지판을 관광객들이 자주 훔쳐가는 일이 잦았는데 지금은 기념품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으니 훔쳐와서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는 말자. 해진 바지 엉덩이 이야기가 별로 인상적이지 않아서 기념품 가게에서 ‘어, 이거구나.’ 하면서도 사지는 않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으면 하나 사다 집에 걸어 넣고 손님들 올 때마다 호사가의 전 지구적인 관심사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소재로 쓸 걸 그랬다. 옐로나이프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하나 정도는 슬쩍해서 무용담까지 얹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