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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즐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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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Sep 30. 2024

가을 속으로 달려요!

즐라해요!


아침, 저녁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여름 이불을 끌어안고 자다가 추워서 초가을 이불을 꺼냈다. 땀이 나지 않는 뽀송한 기분을 오랜만에 느낀다. 하늘은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높고 파란 하늘에 자전거가 둥실둥실 떠 간다.


여름 내 타지 못한 자전거를 꺼내 공기를 주입하고 체인을 점검했다. 공기압이 30 아래로 떨어져 있다. 90까지는 채워야 한다. 깨끗한 면걸레로 체인도 닦았다. 기름을 치고 체인의 마디마디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자전거 체인의 관리는 자전거 수명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안전한 주행을 위해 필요하다. 부실한 체력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게 해 주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바퀴에 바람을 넣고 체인도 닦았더니 페달가볍다. 




자전거가 지나는 길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청명하다.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가 폐에 가득 들어온다. 온몸에 와 부딪치는 바람의 시원함을 어떻게 설명할까. 몸속 폐는 물론 뇌에도 바람이 들어와 잡된 생각들을 몰고 지나간다. 구석구석이 시원해진다. 햇살은 모든 것을 반짝거리게 하고 바람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햇살과 만난다. 앞서 가는 친구의 자전거도 그의 웃는 모습도 강물도 나뭇잎들도 모두 반짝거린다. 정말 여름은 가열찼다. 드디어 여름이 갔다.


강은 흐르고 반짝인다


마지막 제초작업이리라. 지역인들이 길가의 잡초를 제거하고 있었다. 그 해의 마지막 제초작업은 처서를 즈음으로 했었다. 추석을 앞둔 이유이기도 했지만 처서를 기점으로 모기는 입이 삐뚤어지고 풀은 더 자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처서가 지나도 모기입이 삐뚤어지기는커녕 더 극성이고 풀은 끊임없이 자랐다. 달라진 기후로 인해 이제는 처서와 추석을 훌쩍 넘겨 풀을 벤다. 마침내 아침, 저녁 기온이 낮아지며 여름이 물러가고 있으니 풀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것이다. 올해 풀과의 전쟁은 이것으로 끝이다. 베어낸 풀들이 마르는 풀냄새가 길에 가득하다. 그 냄새가 가을 감성을 자극한다.


올해 마지막 제초작업이다

그늘진 곳엔 정화식물 고마리가 가득 퍼져있고 크고 작은 습지엔 스크렁과 갈대가 피었다. 강아지풀처럼 생겼으나 크기가 더 큰 것을 스크렁이라고 한단다. 요즘 어딜 가나 커다란 스크렁들이 한창이다. 의도된 식생일까... 갈대와 스크렁이 함께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카메라를 누르는 손등을 스친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솜털마다 씨가 촘촘히 들어차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익어가고 바람에 흔들리는구나. 햇살은 열매를 만들고 바람은 열매를 퍼뜨린다. 잘 흔들려야 멀리멀리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것이 어디" 있겠냐고 도종환 시인은 노래했는데, 때때로 미숙했던, 제대로 흔들릴 줄 몰라서 낭패감만 붙들고 자책했던 흔들림들스쳐간다. 

생이여, 흔들림은 60부터가 진짜다!

나를  흔들어 다오!


 정화 식물 고마리 군락
무리지어 핀 스크렁
큰 것은 1m가 넘는 것도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장소다.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선 사이에 벤치가 있고 바로 앞에는 강물이다. 강으로 내려가 강물에 손을 담글 수도 있다. 친구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강물이 반짝여서 선글라스를 벗을 수가 없다. 햇살이 맑아 선글라스 안의 눈동자와 안경에 비친 강물이 함께 보인다. 풍경과 날씨가 주는 감동으로 조용하다. 이런 지역에 살아 감사하다는 말도 아낀다. 

"이 날씨에 이런 곳에서 자전거를 타야 예의지."

"ㅎㅎㅎ 황송한 시간이다."

 "캬~~ 저 강물에서 우리 수영했잖아."

모두가 웃는다. 그랬지. 강물에서 우리 제대로 놀았잖아. 그 시간도 저 강물처럼 흘러갔구나.... 강물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이 강물과 함께 조용히 넘실거리며 저마다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흔들리는 것도 추억이고 치유다. 포도알 몇 개와 비스킷을 조금 먹고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휴식하는 자전거들

여름 내 북적이던 수상레저의 바지선이 한가하다. 문이 닫혔고 보트엔 덮개를 씌워놓았다. 왁자지껄하며  환호하는 소리가 바지선 어딘가에 남아있는 듯하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의 그림자가 벤치에 앉아있다. 수상스키를 타던 바지선도 빈 벤치도 가을이 되었다. 풍경안에 들어온 사람이 없어서 비어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가득 차있다.

 

빈 벤치에도 가을이 머물고 있다

제법 큰 규모의 논이다. 눈길 가는 곳을 넘어 멀리까지 노란 물결이다. 벼들을 쓰다듬으니 바싹 말라있다. 누구의 농사일까. 잡초 하나 없이 정갈하게 돌본 경건한 풍경이다. 풍년을 기원하며 자전거에 다시 올랐다.


바스락거리는 벼들
즐라했어요!

무사히 출발지로 돌아왔다. 콧잔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다.

"진짜 여름이 갔어! ^^ "

손을 모으고 파이팅을 외친다.

가을 속으로 즐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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