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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짧은 생각

통괘했다

짧은 생각

by Eli


밥을 먹다가 자꾸 흘린다.

국물도 후루룩 하다가 흘리고

밥 알도 씹다가 투 둑 하고 흘리고

콧물도 흘리고

뭘 자꾸 잊어서 정신도 흘리고.


처음엔 내가 무엇을 흘렸는지 몰랐다.

남들이 말해 주어서 알았다.

나이가 드니 하나 둘 이를 뺐고

빠진 이 사이로 음식이 흐르는 건지

턱 근육에 요실금이 온 건지

자꾸 흘린다.


아들이 화를 냈다.

아이 참, 엄니, 할머니 아니잖아요.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자꾸 흘리고 훌쩍거리시니까...

예전엔 안 그러셨잖아요.


아.......

그래, 예전엔 안 그랬지.

빠진 이도 없었고

무엇이 흐를 구멍도 없었지.


힘들어도 아닌 척,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부아가 치밀어도 쿨한척,

잔뜩 쫄았으면서도 센 척

좋은 게 좋은 거다 참는 척 하면서

아무 말 안 하니까 지가 옳은 줄 안다.

그래, 예전엔 안 그랬지.


밥을 먹다 일어선다.

아들이 어쩔 줄 몰라한다.

이젠 무슨 척 하기도 싫고

밥알 하나 흘렸다고 화를 내냐.

억울하고 화가 났다.


"니 엄마, 할머니 맞아. 나이 먹었거든.

기다려 봐. 너도 곧 와.

그땐 니 아들이 그렇게 말해 줄거다.

이 스키야, 좀 흘리면 어때서

나는 맨날 괜찮은 줄 아냐?

나쁜 스키."


말하고 나니 통쾌했다.

나쁜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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