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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함을 견디는 과정

필사하며 나누며

by Eli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이 글쓰기의 목적은 필사 문장을 다시 음미하고 확장하려는 데 있습니다.





좋은 공부일수록 모호함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모호함은 모든 지식에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고 있다. 공부를 해나갈수록 직면하는 것은 모호함이고 이 모호함을 파고들어 명확성을 얻고 나면 다시 다른 모호함을 만나게 된다. 즉 진짜 공부는 모호함을 연속적으로 맞닥뜨리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모호함을 두려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에너지로 생각하는 공부의 자세가 필요하다.

- 독학력, <고요엘> -


질문 : 모호함을 견디는 과정이 바로 공부하는 자세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모호함을 만났을 때 어떤 방법으로 극복해야 할까요?





" 진짜 공부는 모호함을 연속적으로 맞닥뜨리는 과정이다."


수영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질문을 보고 지체 없이 수영이 떠올랐다. 최근 몇 년간 수영을 할 때마다 나는 모호함을 연속적으로 맞닥뜨리는 과정을 겪어왔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으니 아주 적절하지 않은가.


수영을 배우러 간 첫날부터 어려웠다. 수영 강사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와중에 "음파"라는 걸 해야 했다. 내가 처음 직면한 모호함은 강사의 언어와 "음파", 바로 호흡이었다. 호흡은 한참 동안 나를 괴롭혔다. 처음 일주일을 보내고 나는 책을 읽고 동영상 등을 참고하며 수영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제야 강사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흔히들 수영의 호흡은 "음파"라고 한다. "~~"하면서 물속으로 들어가 숨을 참다가 "파!" 하면서 물밖으로 나와 숨을 쉬는 것이다. "~"은 길게, ""는 짧게 한다. 분명히 한 주간 내내 음, 파를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숨이 차서 머리를 드느라 바빴고 그럴수록 물이 입으로 들어와 꿀꺽꿀꺽 마셔댔다. 물에 빠져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수영장의 깊이는 깊어야 130m인데 빠져 죽을까 봐 자꾸만 머리를 들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머리를 푹 담그고 30까지 세어보았다. 신기하게 몸이 붕 뜨면서 참을 만했다. 팔다리를 움직이면서도 호흡이 제대로 되기 시작한 것은 상급반으로 올라갔을 때였다.


음, 파가 자연스러워지면 킥판이라는 것을 부여잡고 발차기를 배운다. 킥판을 잡고 발차기하는 데도 기술이 있다. 그저 물에 뜨는 판을 잡고 힘껏 발을 차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아니다. 열심히 발을 찼는데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숨은 숨대로 거칠게 헉헉대며 제자리에 머무는 기술을 발휘하고 있노라면 강사는 한숨을 내쉰다. 열심히 발을 찬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힘으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이다. 킥판은 몸이 가라앉지 않도록 하는 최소의 도구일 뿐 몸이 의지해야 할 것은 바로 코어다. 나의 의지와 힘을 배꼽에 집중하고 몸의 힘을 빼면 가라앉지 않는다. 코어를 의식하며 상체를 고정한 후 무릎을 살짝 구부려 들어 올렸다가 허벅지에서 정강이와 발등으로 이어지는 다리 전체로 수면 바로 아래까지만 꾹꾹 눌러주면 몸은 미끄러지듯 나간다. 발차기는 수영의 기본이며 이해 정도에 따라 수영 수준이 드러난다. 발차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상급반으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제 자유형이다. 팔만 뻗으면 가라앉아 물을 먹다가 드디어 앞으로 나아가고 물은 먹지 않게 된다. 그러다 배영을 하면서 또 물을 먹고 접영 다음으로 역동적인 평영은 너무 힘들다. 개구리가 되어야 한다. 개구리가 헤엄치는 것을 보고 또 보아도 개구리는 되지 못한다. 나는 지금도 평영이 제일 힘들다. 영법을 새로 익힐 때마다 좌절을 하고 수영을 그만둘까 생각하면서 어찌어찌 접영까지 왔지만 또 벽에 부딪친다. 이놈의 엉덩이는 왜 안 올라가는 걸까. 킥이 문제였구나. 시간이 해결해 준다. 결국 접영이라는 큰 산도 넘고 스스로 대견해서 자꾸 수영장에 가고 싶다. 수영을 누가 어렵다 했던가. 이 재미있는 걸! 하며 웃던 어느 날, 발차기를 가볍게 할 수 있고 네 가지 영법을 다 익혔는데도 수영에 진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유형부터 접영까지 하긴 하는데 모든 영법이 갈수록 힘들고 벽에 막힌 기분이 든다. 진짜 모호함 앞에 선 것이다.


네 가지 영법을 익혔지만 몸이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흔들린다고 지적을 받고 물을 잡지 못한다고 지청구를 듣는다. 거기에 롤링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보태진다. 말은 알아듣겠지만 아, 뭔 소리냐? 몸이 흔들리는 것은 코어를 잡지 못해서이고 물을 잡지 못한다는 것은 손바닥이 아닌 전완근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며 물을 잡고 밀어내는 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몸통의 롤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이 더 지나야 알게 되는 것들이다. 벽을 넘어서면 또 다른 벽을 만났고 그 한계를 넘어서면 또 다른 한계에 부딪쳤다. 그것도 모자라 그 벽이 자꾸 세분화되면서 모호함이 더 모호해져 갔다.


알긴 알겠는데 정확하지 않은 것. 그 앎은 개인차를 동반한다는 것. 언어로 분명하게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 일정한 경험을 위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모호함 속에 들어있는 또 다른 모호함 들이다. 이 모호함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은 속도로 드러난다. 겉으로 보기에 폼도 좋고 잘하는 것 같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러면 의심해야 한다.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

수영에 투자한 시간, 몰입도와 경험치, 물의 역학적 원리에 대한 이해도 등을 다시 점검하고 학습하며 연습해야 한다. 이때는 진짜 벽을 만났다는 기분이 든다. 상급자의 수영이 더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습관화된 버릇과 수영을 잘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 그래도 수영 좀 하는데, 하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디테일에 대한 이해다! 디테일이란 무엇인가. 열심히 하면 되지 뭔 디테일인가. 열심히 한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다. 리셋이 필요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영은 디테일에 있다. 물속에서의 몸의 움직임에 대한 섬세하고 미묘하게 알아차리는 감각이 필요하다. 물을 잡을 때의 각도와 손끝의 방향, 시선 처리, 턱과 정수리의 위치와 움직임, 호흡할 때의 입모양, 무릎의 꺾임, 손바닥의 누름 정도, 발목 유연성, 두 무릎의 간격 등 작고 미세한 디테일들에 눈을 뜨게 된다. 디테일의 차이를 발견하는 건 모호함에 대해 눈을 뜨는 것이다. 이 모호함의 얼굴을 바로 보는 그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사람들은 때로 묻는다.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냐고. 그건 쉽게 대답해 줄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수영 스타일과 신체 조건, 체력과 근력의 정도, 물에 대한 이해와 태도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이 되면 내가 어떤 디테일에 고민하고 집중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물에 대한 이해와 신뢰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최대의 모호함이다.


"공부를 해나갈수록 직면하는 것은 모호함이고 이 모호함을 파고들어 명확성을 얻고 나면 다시 다른 모호함을 만나게 된다. 즉 진짜 공부는 모호함을 연속적으로 맞닥뜨리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모호함을 두려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에너지로 생각하는 공부의 자세가 필요하다."


모호함은 우리를 성장과 변화로 이끌어주지만 이 모호함 앞에서 쉽게 지치거나 좌절도 한다. 모호함은 모호하다는 것 때문에 나를 지치게 하고 해결책을 쉽게 찾기 어려워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학습, 시험 공부, 악기, 그림, 글쓰기, 요리, 수영, 골프, 사업, 관계 등 삶의 대부분에서 나는 반드시 벽을 만나고 모호한 한계에 부딪친다. 모든 모호함들은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계단이었다. 계단을 딛고 넘어서면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모호함 앞에서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특별한 비결은 없다. 물을 믿고 나를 내어주면 어느 순간 물이 나를 띄워주고 밀어주는 마법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내겐 수영이다. 이 마법은 꾸준한 루틴이 주는 선물이다. 누군가는 재능을 말하기도 하지만 꾸준함이 바로 내겐 재능이다. 매일 익숙한 듯 새로운 한계를 마주하지만 그 한계- 모호함은 꾸준함 속에서 조금씩 허물어진다. 더 나아갈 수 없도록 가로막는 벽 앞에서,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모호함 때문에 여전히 헤매지만 나는 이제 한계나, 벽, 모호함을 성장과 변화라고 읽는다. 수영을 할 때마다 모호함을 연속적으로 직면했고 이 곤란함은 처음 맞닥뜨린 호흡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어 갔을 뿐 모호함을 겪지 않은 적이 없다. 이 끝없는 과정은 수영장에서, 글쓰기에서, 관계의 삶 속에서 계속될 것이다. 좌절로 인식됐던 모호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에너지라는 것을 다시 새기고 배울 수 있던 것 역시 필사의 힘이었음을 글을 쓰며 깨닫는다.


"그렇기에 모호함을 두려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에너지로 생각하는 공부의 자세가 필요하다."






<알림>


그동안 "필사하며 나누며"의 매거진을 fragancia작가님과 함께 했습니다. 각각 10편씩 모두 20편의 글을 썼습니다. 때론 힘들었습니다. 글이 쉽게 써지진 않았으니까요. 일주일에 한 편을 쓰기 위해 일주일을 생각에 잠겨 살았습니다.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마지막 "모호함을 견디는 과정"은 수영이야기로 빗댄 글쓰기 이야기이자 우리가 몰입하는 모든 종류의 공부와 사는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지 않는다면 어디 가서 내면의 이야기를 드러내겠습니까. 읽어주시고 라이킷을 눌러 주신 구독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필사하며 나누며"의 글은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계속됩니다. 저희를 잊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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