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라해요!
자전거는 가을을 달렸다. 길에는 사람도 자전거도 없이 시원하고 조용하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서걱거리고 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의 마음도 길과 함께 서걱거린다. 서걱대는 마음에 마음이 베이고 낙엽은 자꾸 뚝뚝 떨어진다.
안장 높이를 평소보다 높였다. 꽤 올라가 앉는다. 앉았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겁이 났는데 이제 그런 무서움은 없어졌다. 제법 구력이 붙은 탓이다. 1.5cm 높이가 주는 힘이 놀랍다. 페달에 가해지는 힘이 시원시원하게 눌린다. 처음 자전거에 올랐을 땐 넘어지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시작할 땐 기술도 경험도 부족하여 자전거라는 도구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익숙해진 지금, 자전거가 편하고 무섭지 않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자유롭다. 이젠 힘을 빼고 더 신중해야 한다. 무언가 조금 알게 되었을 때, 그것에 익숙해져서 숙련되었을 땐 몸을 낮춰야 할 때다. 그래야 사고가 없다.
길을 더 늘려 가기로 한다. 바람은 차고 햇살은 쨍하다. 점퍼의 지퍼를 조금 내리니 서늘한 바람이 파고들어 들끓던 마음을 달랜다. 인생은 원래 외롭다는 걸 아는 것 하고 아, 나 오늘 좀 외로운데, 하고 느끼는 건 다른 감정의 높낮이다. 세상은 내 마음 같지 않고 그 누구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서운함이 자꾸 머리를 든다. 감정들은 일정한 메트로놈의 리듬처럼 서운함과 담담함이 일정한 주기 안에서 반복되는 곡선인가 보다. 덜컹! 충격으로 쓰고 있던 안경이 코끝으로 내려와 햇빛이 눈을 찌른다. 멈춰 서 보니 저 멀리 강물이 새하얗다.
반짝이는 강물.
얼굴에 닿는 바람.
데롱거리는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
나무들은 묵묵하고 강은 하염없이 흐른다.
물 한 모금 마신다. 머리 위로 나뭇잎이 툭, 떨어진다. 자전거가 지나갈 때마다 길은 바스락거린다. 큰 짐을 싣고 힘겹게 페달을 밟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언뜻 봐도 자전거 여행 중인 외국인이다.
하이!
하이! 파이팅!
웃는 눈이 착하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아마도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겠지.
조심히 가세요! Take care!
며칠 전 이틀 연속으로 서리가 내리더니 길이 물들고 있다. 쟨 뭐야. 도마뱀이 빠르게 달아난다.
아침을 거르고 나왔더니 배가 고프다. 지날 때마다 닫혀있던 식당이 오늘은 문을 열었다. 들어가서 칼국수를 주문했다. 혼자세요? 네. 그럼 저쪽으로 가서 앉으세요. 혼자 오는 손님은 늘 다른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혼자보다 다수를 더 배려한다. 문가에 놓인 식탁에 앉는다. 직접 밀고 썬 국수가 나왔다. 멋 부리지 않은 슴슴하고 덤덤한 칼국수다. 김치도 소박하다. 막걸리 한 잔이 당기지만 참는다. 반 넘게 먹으니 배가 부르다. 친구에게 칼국수 사진을 보내니 친구는 제주도에서 먹는다며 보말 칼국수 사진을 보내왔다. 우왕, 좋겠다!
돌아오다 보니 덩굴을 걷어낸 호박밭에 늙은 호박들이 뒹굴고 있다. 늦가을 햇살아래 덩이가 꽤 많다. 노랗고 달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굴을 빠져나와 다시 가을로 들어간다. 온통 바스락 거리는 소리들. 빨간 단풍나무 사이로 바람과 햇빛이 새어 나온다. 서걱이는 소리와 마음으로 시작한 라이딩에 몸도 마음도 촉촉히 젖었다.
오늘도 즐라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