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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투투 이야기

by Eli


투투는 요즘 재미가 없습니다. 넥 카라를 착용 중이거든요. 오른쪽 뒷다리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 핥아서 염증이 생겼는데 낫지 않습니다. 2년 전 다리를 수술하며 박았던 핀도 뺐는데 무엇이 투투를 거스르게 하는지 다리를 핥아대는 통에 아침마다 피가 맺힐 정도입니다. 처음엔 밤에만 넥 카라를 했지만 별 효과가 없어서 하루 종일 착용한 지 한 주가 지났습니다. 매일 소독하고 처방받은 연고를 바릅니다. 그래서 투투는 사는 게 재미 없다는 얼굴로 엄마를 바라봅니다.


아, 재미 없어...


장난감에도 흥미가 없고 산책할 때만 신이 납니다. 산책할 땐 넥 카라를 벗으니까요. 아침에 나가서 볼일을 보고 들어 온 투투가 자꾸 엄마를 조릅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간식 줄까? 하는 말에 빙그르르 돌며 좋아합니다. 손 줘, 발 줘, 하이 파이브 등 개인기를 하고 콜라겐, 오리 날개, 닭고기 등을 얌냠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를 향해 레이저를 쏘았습니다. 좋아. 오랜만에 나비놀이 해 보자. 투투에게 "기다려"는 "나비"입니다. 단백질 칩을 서너 개 들고 하나씩 "나비~"를 합니다.



자, 투투. 지금부터 나비하는 거야. 꼬리를 치며 겅중거리던 투투가 자리에 앉더니 간식을 보고 기다립니다. 엄마가 "나비~"하며 간식을 놓았습니다. 넥 카라에 간식을 둔 건 너무 한다고요?ㅎㅎㅎㅎ그렇군요. 엄마가 너무합니다. 투투를 더 관찰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아주 가까이 간식을 놓아도 참고 기다릴 수 있는지를요.



투투는 정말 훌륭합니다. 비록 발냄새가 꼬질하게 나고 산책길에서 동네분들께 왕왕 짖어대지만 기다리는 모습을 좀 보십시오. 기특하지 않습니까? 바로 코앞에 간식이 있어도 "나비"라는 한 마디에 참고 기다리니까요. 1분이 지나 1분 30초가 넘어갔지만 투투는 미동도 없이 기다립니다. 조바심을 치지도 않습니다. 엄마를 한 번 힐끗 보기만 할 뿐, 집중하고 있습니다.



먹으라고 하자 엄마를 쳐다봅니다. 먹어도 되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먹어도 된다고 하자 그제야 투투는 아주 조심스럽게 간식을 먹었습니다.



기다릴 줄 아는 개들은 자기 통제력이 높다고 합니다. 이것은 보호자와의 유대가 좋고 서로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스트레스 조절 또한 양호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다린 후엔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걸 투투는 아는 것이지요. 기다리는 시간이 30초든 1분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도 믿음 때문입니다. 투투는 가족들이 하루 종일 집을 비워도 혼자 잘 지냅니다. 분리불안이 없습니다. 아빠나 엄마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니까요.


투투는 엄마를 완전히 믿습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엄마는 기다림에 서툰 사람입니다. 급한 성격 탓에 기다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참다가 그만 성질을 부리곤 한답니다. 투투를 보니 엄마에겐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투투와 나비 놀이를 하다보니 엄마도 기다리는 대상과 나비놀이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기다림은 언제쯤 끝날까요. 소나기는 왼종일 퍼붓지 않는다지요. 엄마가 기다리는 그 사람은 성장을 위해 지금 쪼그리고 앉아있지만 조만간 펄쩍 뛰어 도약을 할 거라고 믿겠습니다. 투투처럼요.


잘 기다리는 투투가 대견합니다. 마지막 간식은 기다림 없이 바로 주고 우리는 다정하게 마당으로 나가 가을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투투 다리도 곧 나을 것입니다.


공기를 마시며 킁킁대는 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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