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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 청메이 Jun 21. 2019

발레의 좋은 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운동

이런 일들이 생길 것임을 알고 시작한 건 물론 아니었지만 참 적합한 시점에 잘 시작했단 하는 게 있다면 바로 발레이다.

작년 10월 쯤, 새로운 운동을 해보고 싶고 뭔가 이번엔 과한 것말고 좀 차분한 게 하고 싶었다.

나는 원래 몸을 많이 움직이는 에너제틱한 운동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한 운동은 요가였다.

근데 요가도 내가 너무 과하게 한 나머지... 목과 등 근육을 다친 이후로 쉬고 있었다. 하하


이전까지 나에게 발레는 나와는 무관한 세상 속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 사촌언니에게 받은 <환상의 프리마돈나>라는 만화책덕에 발레에 조금 흥미를 갖기는 했지만 그 때만해도 일반인들이 운동으로 발레를 하던 때는 아니었다. 어린이 발레교실같은 게 있긴 했지만 이미 그 때 나는 어린이는 아니었다.

종종 발레공연을 보긴 했다. 백조의 호수는 워낙 예뻐서 좋아하지만 어두운 무대때문인지 늘 중간에 졸았던 것 같고(개인적으로 흑조가 나올때가 더 좋다. 그래서 영화 <블랙스완>도 좋아한다) 그나마 재미있게 보는 것은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하는 화려한 호두까기인형 아이스발레였다.

그리고 발레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궁극적인 공연은 돈키호테였다. 해설이 있는 발레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손동작 하나, 몸짓 하나가 대사라는 것을 그동안 몰랐다. 그건 내 쓸데없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발레 <돈키호테> (출처: 볼쇼이 씨어터)


공연을 본 후 곧바로 시작은 아니었지만 어느날 무언가의 이끌림에 의해 발레학원을 가게 됐다.

처음에는 그 쫄쫄이 연습복이 너무 민망했다. 뭔가 나만 더 뚱뚱해보이는 거 같고 내 발레복만 안 예쁜거 같고 그랬다. 다 예쁜데 나만 안 예뻐. 하지만 지금은 그런거 신경도 안쓴다.


원장쌤이 학원을 차릴 때부터 함께 했던 분들도 계셔서 10년 넘게 하고 계신 분들도 계시는데 이 곳은 다른 발레학원들과는 다르게 반이 구별되어 있지 않다. 즉, 처음하는 사람이나 10년한 사람이나 같은 수업을 받는다. 선생님의 말로는 일반인은 어차피 다 똑같고 처음하는 사람들일 수록 이런 사람들이랑 해야 빨린 는단다. 처음엔 따라가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확실히 나는 빨리 늘었다. 역시 15년 넘게 지도한 노하우는 무시할 수 없나보다.


충격적 사건을 겪은 후 다른 것들은 잘 하지 못했다. 특히 유부남 남친 사건의 충격은 내가 집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멘붕 속에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내가 하필 여행 전 3개월치 수업료를 결제해 놓는 바람에 발레는 어쩔 수 없이 가야했다.(여행 다녀오면 하기 싫어질까봐 미리 끊어놨는데 그게 참 잘한 짓이었다)


선생님은 한달만에 온 나를 보고 너무 깜짝 놀라셨다. 보통 여행다녀오면 근력은 다 빠져도 몸이 가벼워져서 오는데 왜이렇게 부었냐고.(실제로 내 다리는 접히지 않을 정도로 부었고 내 친구들은 날 보고 너무 놀라 큰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고 했다.)

운동할때는 너무 몸이 무거워서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 날 붓기가 많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또 갔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한 5일 쯤 지나니까 드디어 내 몸이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 제대로 하지는 못한다. 지금도 여전히 동작을 하면서도 머릿속엔 그 사건만 가득하다. 그래서 자꾸 동작을 놓쳐서 쌤이 내 이름을 많이 부른다. "ㅇㅇ씨, 정신차려! 무슨 발이야 지금!" ㅎㅎㅎ

 

매일 가려고 노력한다. 그거라도 안하면 난 24시간 동안 그 생각만 하니까. 그 사건 안 다음부터 정신과 가서 약 처방받아오기 전까지 잠을 거의 못잤으니까 진짜 24시간 그 생각만 했다고 봐도 된다. 그래도 발레할때는 운동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니까, 다음 동작 뭔지 생각해야하니까, 중간중간 그 사건이 떠올라도 호통치는 쌤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곤 하니까.




솔직히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를 배우고 싶었던 내 원래의 호기심을 채우고 있지는 못하다. 그래도 발레는 참 좋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서적 안정이 된다. 어느날 내가 클래식 음악을 흥얼거리고 있어서 이걸 내가 어디서 들었지 했더니 발레음악이더라. 꽤나 고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아 흐뭇했다. 사실 이게 다른 운동과의 가장 큰 차이이자 발레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또 발레는 과하지 않다. 쉽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운동을 하면서 보통 많이 다치는 이유가 너무 과하게 꺾거나 조금만 더 해보자 하다가 다치는데 발레는 과하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전공발레인들은 다르지만 일반인들은 한계가 있다. 그걸 더 과하게 하는 것보다는 본인의 수준에서 몸의 중심을 잡고 적당히 하는 것이 더 예쁜 동작이 나온다. 그러다보니 나같이 운동욕심이 있는 사람도 과한 동작을 욕심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왜 더 꺾을 수 있는데 못꺾게 하시는거지, 아 나 더 높게 찰 수 있는데 왜 낮게 하라고 하시는거지'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는거다.


더불어 발레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된다. 굉장히 가벼운 운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제대로 동작을 하려면 내 평생 만들어온 근육의 형태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하는 거라 땀도 많이 나고 진짜 제대로 한 다음 날은 근육통이 온다. 오늘은 진짜 물에 젖은 발레복을 입었나 싶을 정도로 땀에 젖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내 몸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파악하게 되는 거다. 알면 고치려는 노력이라도 할 수 있지만 모르면 답이 없지 않은가. 일단 나는 그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본다.


혹시 발레를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나는 적극 추천한다. 체형교정으로 필라테스와 많이들 고민하고는 하는데 필라테스는 내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비교하기 어렵다. 다만 운동의 기원이 필라테스는 재활로 시작된 거고 발레는 귀족의 취미로 시작된 것인 만큼 본인이 더 필요한 방향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필라테스나 발레나 내 몸을 바꾸려면 단기간으로는 안된다는 거다. 그러니 본인이 더 재미있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것 찾기. 이게 지금 나 스스로에게 내린 과제이다.

하나씩 하나씩 과제를 수행해나가고 있다. 잘하고 있다. 아주 잘하고 있다.

지금은 그 정신이 못되지만 언젠가는 일반인 콩쿨에 도전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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