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들면 잊을 수 있었다. 고작 내가 만들어낸 작은 허상 중 하나일 뿐이지만, 잠이 들고 꿈을 꿀 때만큼은 고요히 강 위를 나는 새처럼 자유로웠다.
꿈에선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당신의 키, 당신의 얼굴, 당신의 손짓, 당신의 목소리. 훌쩍 커버려 외모도 내면도 변한 나와 달리, 당신은 내 기억의 한순간에 남아있었다. 그런 변함없는 당신이 좋았다. 좋다. 내 기억 속에서 잠들어 있는 당신을 형체로 꺼내올 수 있는 내 꿈이, 당신을 만날 수 있는 내 꿈이 좋다.
언젠가 당신이 꿈에서 내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찍었다. 내 얼굴, 내 몸, 내 모습. 당신은 카메라의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신의 카메라에 담긴 내 모습은 당신이 보지 못했던 변한 내 모습. 당신의 기억 속에 나를 담아내고 싶은 듯, 그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듯 당신은 조용히 나를 담았다. 담긴 나는 말이 없다.
당신은 항상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고장난 시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잠이 들고 꿈을 꾼다. 당신을 꿈에서라도 만나기를 기대하며, 당신을 만남으로 당신을 잊을 수 있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