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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민 Jun 22. 2020

당신의 허상

에세이#4

 잠이 들면 잊을 수 있었다.
 고작 내가 만들어낸 작은 허상 중 하나일 뿐이지만, 잠이 들고 꿈을 꿀 때만큼은 고요히 강 위를 나는 새처럼 자유로웠다.


 꿈에선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당신의 키, 당신의 얼굴, 당신의 손짓, 당신의 목소리. 훌쩍 커버려 외모도 내면도 변한 나와 달리, 당신은 내 기억의 한순간에 남아있었다. 그런 변함없는 당신이 좋았다. 좋다. 내 기억 속에서 잠들어 있는 당신을 형체로 꺼내올 수 있는 내 꿈이, 당신을 만날 수 있는 내 꿈이 좋다.


 언젠가 당신이 꿈에서 내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당신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찍었다. 내 얼굴, 내 몸, 내 모습. 당신은 카메라의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신의 카메라에 담긴 내 모습은 당신이 보지 못했던 변한 내 모습. 당신의 기억 속에 나를 담아내고 싶은 듯, 그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듯 당신은 조용히 나를 았다. 담긴 나는 말이 없다.




 당신은 항상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고장 난 시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잠이 들고 꿈을 꾼다.
 당신을 꿈에서라도 만나기를 기대하며, 당신을 만남으로 당신을 잊을 수 있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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