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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민 Jun 24. 2020

뜨거웠던 첫사랑의 기억 - 그해, 여름 손님

책 리뷰#1 CALL ME BY YOUR NAME(그해, 여름 손님)

-본 리뷰는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해 여름, 시작되었다.

 1980년대, 엘리오는 매년 여름과 똑같이 이탈리아 해안가에 위치한 별장에서 여름을 보낸다. 엘리오의 부모님은 매해 여름, 책 출간 전 원고를 손봐야 하는 젊은 학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6주간 그들을 불러 별장의 ‘여름 손님’으로 맞이한다. 17살의 여름을 맞이한 엘리오, 그리고 그해 여름 손님으로 온 24세 미국인 철학 교수 올리버.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그동안 느껴본 적 없는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17살, 첫사랑, 여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17세 엘리오의 혼란스럽고 서투른 소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준다. 큰 덩어리가 작은 알갱이로 잘게 부서져 각각 하나하나의 정확한 성질을 가지듯이 올리버를 향한 복잡하고 종잡지 못했던 어지러운 감정이 일종의 부서지는 과정을 통해 섬세함으로 이어진다. 1장─나중이 아니면 언제?─에서는 문단마다 ‘어쩌면 그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이 자주 나오는데,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빠져들어, 그 시작의 행방을 찾으며 점점 더 그에게 물들었던 것을 보여준다. 엘리오가 1980년대의 그해 여름을 회상하며 그 시작의 행방을 찾는 것, 우리는 그 비유와 묘사를 통해 엘리오가 17살에 가졌던 미성숙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복숭아",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영화배우 같은, 자유분방하고 신선한 매력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호감을 발산하는 올리버에게 엘리오는 속수무책으로 빠져들며 한여름의 첫사랑을 경험한다. 파란색 셔츠 입고, 선글라스와 밀짚모자를 썼으며, 해진 에스파듀를 신고 ‘나중에!’라는 인사말을 하며 나타난 그. 엘리오는 올리버의 행동에 쉽게 상처받고 수치스러워하지만, 항상 눈은 그를 쫓고 그에게 머물고 싶어 한다.

 소설에서는 복숭아라는 과일이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복숭아를 성기에 대고 문지르며 끊임없이 올리버를 생각한다. 엘리오의 사랑은 마치 복숭아 같다. 복숭아의 과육처럼 아주 달콤하고, 가끔은 떫기도 하며, 쉽게 무르고 멍이 든다. 또한 올리버는 엘리오의 복숭아를 먹는데, 그러한 먹는 과정을 통해 엘리오의 사랑을 내면에 간직한다.

 소설의 제목 ─CALL ME BY YOUR NAME─은 중요한 대사로 소설 속, 그리고 영화 속에서 등장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우리는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 물건 따위에 이름을 붙이며 그것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가령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지나가는 사랑스러운 고양이에게 나비라는 이름을 불러주며, 각별한 것들에 ‘야, 저기, 있잖아.’가 아닌 그 사람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처럼. 그렇기에 이름으로 불러 달라는 것은 당신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것, 또한 서로의 이름을 서로에게 불러줌으로써 서로를 하나로 느끼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사랑을 나눌 때,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며 하나 됨을 느끼고자 한다.


"여름", "15년 후

 여름은 미화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한여름 밤의 꿈, 여름의 책, 여름의 존재, 여름 냄새─ 책의 도입 부분을 보면, 성장한 엘리오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계절은 여름. 가슴 아픈 첫사랑의 기억이지만 한없이 아름다운 여름의 모습은 어쩌면 미화된 첫사랑의 기억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그들의 배경을 여름으로 잡은 것, 엘리오와 올리버가 헤어진 후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결혼 소식을 전한 날의 배경이 한없이 냉랭한 겨울인 이유를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시작은 뜨거웠던 여름날처럼 마음을 달구고 불타올랐으며 사랑의 끝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사랑에도 계절이 있다. 여름날의 뜨거웠던 사랑이, 엘리오의 사랑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책의 4부 ─텅 빈 자리─에서는 엘리오가 올리버와 헤어지고 15년의 세월이 흐른다. 15년 동안 엘리오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엘리오가 여름날 느꼈던 사랑이 절절하고 마음 아프게 다가온 것 같다.<젊은 베르터의 슬픔>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아직 나는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절절한 사랑을 해 본 적도 없기에 그들의 관계와 관계 속에서 형성된 감정을 모두 읽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엘리오의 독백은 그 시대와 그 시절의 기분을 물씬 느끼게 해주었다. 아직 완전히 자라지 못한 미성숙한 엘리오의 사랑과 15년 후 올리버를 만났을 때의 엘리오의 사랑은 엘리오의 비유로 가득한 독백으로 온전히 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문체와 비유를 통해 경험한 1980년대 이탈리아의 여름,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어린 소년의 뜨거운 첫사랑, 그리고 이별.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사랑을 나누고 로마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봤을 때, 정해진 결말로 더욱 다가가는 기분에 오히려 마음이 편치 못했다. 엘리오는 그해 여름에 다가왔던 사랑이 그저 아픔의 기억이 아닌 성장의 발판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읽는 내내 나도 엘리오처럼 17세의 어린 소년의 마음이었고, 엘리오의 시간이 15년이 흐른 후에는 함께 15년이 지났었다.

 사랑에 대한 묘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이유는 그만큼 그 감정이 단순한 글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올리버와의 지속된 관계 속에서 형성된 감정을 온전히 아는 것은 엘리오 뿐이다. 올리버를 “엘리오”라고 불렀을 때의 감정 또한.


 영화로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지만, 책을 먼저 읽어봐야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서점에서 급하게 책을 산 후 읽어내려갔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이 가끔 보여 읽기 조금 어렵기도 했다. 다행히 영화가 재개봉하기 전에 완독했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의 분위기는 책의 분위기와 같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아무래도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2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하려니 생략된 감정선과 등장인물들이 있었고, 만일 책을 읽지 않은 채로 영화를 봤다면 그 부분을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아직 영화와 책을 보지 않았다면 먼저 책을 읽고, 영화 보기를 추천한다. 내가 글을 읽으며 눈으로 그렸던 인물의 모습과 감정선이 영화에서 보여질 때, 이 작품의 완성도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태어나 처음 해 본 일이었다. 그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나는 그 전에, 어쩌면 그 후에도 타인과 공유한 적이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모네의 언덕 P173
당신이 전부 다 기억한다면, 정말로 나와 같다면 내일 떠나기 전에, 택시 문을 닫기 전에, 이미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이 삶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장난으로도 좋고 나중에 불현듯 생각나서라도 좋아요,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테니까, 나를 돌아보고 얼굴을 보고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줘요.

-텅 빈 자리 P315


'안드레 애치먼 - 콜미 바이 유어 네임(그해, 여름 손님)을 읽다.

2020.06.24 콜미 바이 유어 네임(그해, 여름 손님) 독후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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