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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빛 Jan 11. 2022

3. 행운도 추가가 되나요

 

 남편이 떠난 후 다시 나빠진 코로나 상황으로 여름휴가 한 번 가지 못한 채 길고 긴 유치원 여름 방학이 끝났다. 아이가 다시 유치원에 등원하면서 미뤄두었던 운동도 시작하고, 내 생활도 다시 안정적인 궤도를 돌고 있을 무렵, 우연히 들어갔던 베트남 맘 카페에서 '하노이 한국 국제학교 신입생 추가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2022년도 1학년 신입생을 늘리기로 하면서 추가 인원을 접수한다는 공고였다. 결원이 생겨 서너 명을 모집한다는 것도 아니고 반을 뽑는다니. 이미 지난 5월에 들어갈 있는 사람은 들어갔을 텐데 정도의 추가 인원 모집이라면 상당히 가능성 있는 숫자였다. 추가 모집 접수 기한까지는 두 달 정도가 남아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자유로운 입국이 가능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베트남에 입국하려면 관련 업체를 통해 입국 신청을 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데 학교 접수까지 남은 두 달 정도의 시간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만약 이 시기를 놓쳐 입국하지 못한다면 한국 학교는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이니 한국에서 더 지내다 나중에 베트남으로 넘어가서 한국 학교 전학을 알아보거나, 국제 학교를 보내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기에 빠른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기다려 왔던 순간이기도 했지만 막상 정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겁이 났다. 트렁크 몇 개 달랑 들고 여행 가는 것이 아니니까 떠나기 전 처리해야 할 일들이 주는 압박감이 밀물처럼 밀려왔고, 무엇보다 베트남에 '가는 것'만 생각해 왔지 베트남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는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까. 한국에서 나고 평생을 이곳에서 지낸 내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서 과연 살 수 있을까. 그것도 아이를 키우면서. 한 발자국밖에 안 남은 미래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한 발자국을 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던 거다.


 이틀 정도 고민을 하다 일단 남편에게 알렸다. 사실, 그동안 좀 남편과 냉전 중이었다. 언제 가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은 계속 내게 스트레스였고,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내게 상황이 이런데 지금 뭘 결정할 수 있겠냐며 자꾸 한발 미루는 것 같은 남편의 태도는 나를 더 열 받게 했다. 게다가 코로나 시국에 아이를 혼자 돌보며 쌓이는 짜증을 남편에게 풀다 보니 점점 서로의 연락을 반가워하지도 않고 있던 차였다. 그러다 보니 추가모집 공고를 보고 나서도 그다지 반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다시 생긴 기회니 남편과는 상의를 해야 했다.     


'한국 학교 추가 모집 공고가 났어. 한 반 더 모집한대'

'그럼 당연히 들어와야지. 입국 신청할게.'


 아무것도 결정하기 어렵다며 늘 한발 빼던 사람은 어디 가고 남편은 추진력의 화신이 되었다. 아직 속이 배배 꼬여 있던 나는 '돈이 무섭긴 한가 보군. 국제학교 안 보낼 수 있게 되니 아주 그냥 번갯불이 따로 없네' 하며 속으로 구시렁대었지만 어쨌든 이번 기회를 날릴 수는 없으니 남편의 말에 동의했다. 남편은 베트남 업체와 연락해서 나와 아이의 입국 승인 절차 준비를 시작했고, 남아있는 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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