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접수 문제로 하노이에 다녀올 계획이 무산된 후, 남편 없는 일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남편이 들으면 서운할지도 모르겠지만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결혼 초부터 출장을 자주 다녔기 때문에 이미 남편이 없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도 했고, 코로나 시국이라 주말이라고 해서 자유롭게 나들이를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아빠가 없는 것이 크게 티 날 일도 없었다. 게다가 어설프지만 운전을 할 수 있기에 마음만 굳게, 아주 굳게 먹는다면 못 갈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유치원이 매일 등교로 전환되면서 다행히 육아 부담은 한결 줄어들었지만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돌보며 때때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 것도 온전한 나의 몫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거의 자가격리 수준으로 집에 있느라 '어른 인간'들과의 대화가 사무치게 그리웠지만 가끔 만나는 가족 '어른'들과의 대화의 끝에는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격렬한 생각이 몰아칠 뿐이었다.
솔직히 아이와 둘이 사는 삶에 익숙해지면서 굳이 베트남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맘 카페에서 '베트남에 들어갈까요 말까요'라는 질문에 달리는 댓글들은 주로 해외에서 일하는 남편이 혼자서 지내는 것이 불쌍하고, 아빠를 못 보는 아이가 안쓰러우며 무엇보다 가족은 함께해야 하지 않냐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종종 남자가 혼자 있다 보면 유혹이 너무 많아서 현지 여자를 두고 지낸다거나 바람이 난다는 얘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고생은 서로 종류만 다를 뿐 동등하게 하고 있는 것이고, 아이는 딱히 아빠를 찾지 않고 있었으며, 떨어져 있는 삶에 서로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는 데다 외롭고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그런 핑계로 유혹에 넘어간다면 거기서 서로 쫑내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베트남 코로나 상황도 여의치 않은데 굳이 먼저 들어가서 고생할 이유는 없으니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만 서로 주고받으면서.
남편이 들어간 지 석 달쯤 되었을 때, 남편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한국에 돌아갈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원래부터 무릎이 안 좋았었는데 갑자기 무릎이 너무 아프고, 회사도 상사도 마음에 안 들고, 혼자서 힘들다고.
솔직히 기가 찼다.
내가 그렇게 회사를 그만 두라고까지 하면서 말릴 때는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어차피 한 번은 가야 한다며 고집 피우더니, 석 달도 안돼서 돌아오고 싶다고 하면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줏대 없는 인간이었나 싶기도 하고 정말 그렇게 힘이 들어서 그런가 싶기도 해서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통보를 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계속 버티기 힘들 거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고민만 많아지니 딱 이번 달 말까지 고민해봐. 그러고도 계속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지체하지 말고 사표 쓰고 돌아와. 나는 당신의 결정을 존중하고 무조건 지지할 거야.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남겠다는 결정을 할 때에는 나와 아이도 이주를 해야 하는 만큼 최소 3~5년은 있을 생각을 해야 해."
남편은 알겠다고 했고, 약속한 시간이 다 되기 전에 나에게 말했다.
이제 괜찮다고. 그때는 몸도 아프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서 어리광을 부린 것 같다고.
기다려 줘서 고맙다고.
남편의 고민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고민도 결론이 났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내가 한 말이 있으니 완전히 타의도 아닌 어정쩡한 결말.
이제 남은 것은 언제 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