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이직하기 전의 회사를 다닐 때, 24시간 돌아가는 제조현장에서 하루 종일 카톡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보고와 그때그때 발생하는 이슈들을 처리하느라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퇴근을 해도 아이와 눈을 맞추는 시간보다 휴대폰을 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그게 너무 불만이었지만 관리자가 현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남편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었기에 꾹꾹 참아야만 했다.
하노이에 와서 회사를 옮긴 후에야 쉴 새 없이 울려대던 남편의 카톡은 조용해졌다. 드디어 카톡으로부터 해방되었다며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남편도 그동안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긴 했었나 보다. 그런데 남편이 탈출에 성공한 그 카톡 지옥에 이번에는 내가 빠져버렸다.
하노이에 와서 가장 놀란 것 중에 두 번째는, 카톡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물론 배달앱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민 사회 안에서 형성되어 있는 온갖 먹을거리, 생필품, 교육, 중고거래, 병원이나 약국 상담까지 카톡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카톡이 한국에서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메신저 앱이었으니까 카톡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그때도 서로의 번호를 알고 있는, 어지간하면 아는 사람들끼리 카톡을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외국에 나와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카톡으로 소통하게 될 줄은 몰랐다.(이렇게 카톡이 활성화되어 있다니, 카카오 주식을 사야 하나......)
한국어로 소통하고 즉각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어 너무나도 편리한 카톡은 이곳 생활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단톡방에서부터(실시간으로 온갖 정보와 질문, 답변, 주변 이슈들까지 올라오는 방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내가 요즘 주로 의지하고 있는 반찬방들(어디서, 어떤 분이 어떻게 반찬을 만드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그저 반찬을 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역시 중요하다), 하노이의 온갖 학원이나 사교육의 홍보가 이루어지는 교육 정보방(사실 이 방은 그다지 쓸모가 없는데 괜히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일면식은 없지만 모든 주문, 예약, 상담이 이루어지는 미용실, 네일숍, 병원, 약국, 운동, 옷가게, 학원 상담 카톡부터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몰라 누가 올려놓으면 일단 저장하고 보는 온갖 번호들 덕에 내 카톡 목록은 이미 포화상태이고 카톡 알람 배지의 숫자는 수시로 몇 백을 넘어간다. 대부분이 홍보글이지만 그 단체방을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단 유지하고 있다 보니 그렇다. 내 평생 매일 이렇게 많은 카톡(물론 나한테만 보내는 카톡은 당연히 아니지만)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숫자만으로도 매일같이 어질어질하다
당장 필요한 먹거리, 정보를 구하기 위해 매일같이 드나드는 단체방들이지만 정작 그 카톡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서로를 모르는 아이러니 속에
혹시나 내가 놓치는 정보가 있을까 봐, 잠깐 방심하면 몇 백으로 불어나 있는 알람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읽지도 않을 단체방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갔다 나오고 있는 나는 카톡 천국에 있는 걸까 카톡 지옥에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