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울림 Feb 06. 2021

#.17

주간 <임울림>

주 단위로 글을 쓰기로 했던 나와의 약속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벌써 시간이 2월 중순을 향해 달려간다니 시간이 참 무색하기도 하다. 오래간만에 들어온 브런치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일까? 오늘의 주제는 반성으로 잡았다.


반성은 글을 쓰는 사람이 가진 덕목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성찰이니 말이다. 요즘에는 기사를 쓰는 것도 싫었고, 아이템 발제할 힘도 나지 않았다. 초창기 열정이 어디로 가버린 건지 몸도 마음도 축나는 기분이 역력하다. 산업 파트를 다루다 보니 이전부터 재미를 느꼈던 정치, 사회 이슈에 무뎌지게 됐고 어느 순간 저널리즘과는 거리를 두게 됐다.


문장은 더디다. 활력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집에 오면 눕기 바쁘다. 만사가 귀찮다. 그러다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의 '검사와 죄수' 시리즈 기사를 봤다. 스스로 많이 부끄러웠고 마음속의 불씨가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출입처 변동이 오면서 데스크는 특정 출입처 관련 기획 기사를 요구했다. 하라면 해야지. 근데 참, 이런 요구를 하나씩 들을 때마다 젠가 블록을 하나씩 덜어내는 것 같은 공허함을 어찌해야 했을까. 출입처의 생리를 알고 친밀도를 높일수록 견제는 다른 나라 말이 된다.


입사 초기에 수익 사업이 걸려 있는 출입처를 '빨아 주는' 기사를 쓰라는 지시에 불복한 적 있다. 이전부터 결코 무너지지 말자고 다짐했던, 저널리즘에 대한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회사는 재정적으로 휘청거렸다. 조직은 본격적으로 수익과 연관 지어졌고, 기사를 쓰기에 좋은 환경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땐 화가 났다. 뒤돌아보면 화가 난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만큼 애정과 기대가 녹아있다는 거니까. 지금은? 화조차 나지 않는다. 지난주 동료 기자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쓰고 싶어서 들어온 건데, 이게 아니라면 퇴사할까 봐요."


한 명이 얘기하고, 또 다른 한 명이 얘기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이 번지고 있었다. 불을 끄기 위해서는 유능한 소방수가 필요한데, 상사 중에 그런 사람은 없다. 불을 효과적으로 끄는 역할을 하기보다 왜 불을 냈냐고 묻는 상사의 유형이 전형적일 것이다. 낸들 마음속에 불이 나고 싶어서 나겠수?


김경래 기자는 KBS 한 프로그램을 하차하면서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게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정말 참 기자다. 현장에 가는 기사, 오랫동안 한 주제를 깊이 있게 취재하고 연구하고 생각하는 기사. 김경래 기자가 생각하는 정답은 '탐사보도'였다.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나, 생각하는 게 느리지만 깊이 있게 보는 걸 장점으로 활용해 좋은 기사를 써야지."

요즘? 내 생각이 아무리 느리다고 해도 스트레이트 기사 두세 개 정도야 금방 쓴다. 다만, 내가 쓴 기사에 애정이 없을 뿐이다. 이렇게 기계가 돼버리는 걸까? 아니, 그래선 안 되지. 두렵다. 내가 기자직이 가진 사명을 짊어질 자격이 되는 건지 수십 번 묻는다.  


언론의 참 의미는 저널리즘에서만 비롯될 수 있다는 데 격하게 동의한다. 기자직이란 이제 살아남아야만 하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햄릿의 대사를 한번 읊어보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내 안에 타오르는 불씨가 적당히 타올라 동력으로써 활용되길 간절히 바란다. 나 자산을 삼켜버리지 않길. 오늘도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1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