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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Dec 17. 2022

#.27

주간 <임울림>

“가는 데 순서 없어.”


대외활동으로 연을 이어온 친구들을 만났다. 셋은 강남역 부근 고깃집에서 만나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형은 준비된 사람이 먼저 가는 거라고 말했다. 보통 죽음을 두고 하는 이 말에 웃으면서도, 대체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한 걸까, 라는 생각이 한편에 자리했다. 그 찰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기자생활 초창기에, 그러니까 한창 열의가 불타고 있을 시기에 여의도에서 한 취재원을 만났다. 국책금융기관에 계시던 분이었는데 다른 취재원들과 다르게 품위 있었다. 금융권 사람들 특유의 머리 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인터뷰할 당시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노사관계를 현명하게 풀어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지지난 주에는 전 직장 동료들과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때 전해 들은 이야기다. 그분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건. 늦게 발견한 암으로 6개월 남짓 남았다고 했다. 일시적으로 말을 잃었다.


불안은 내가 바라는 이상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그간 나는 극도로 불안한 시기를 겪었다. 취업, 이직, 연봉 등이 내 목을 조였다. 자격증을 따면 또 다른 스펙을 쌓기 위해 골몰한다. 증빙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사회 풍토가 주는 메시지는 늘 ‘긍정하고 감사하라’니 그것도 지겨워서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니 어떤 사람이 되기보다, 무언가 하는 사람이 되자고 되뇌던 시절이 있었다. 되는 건 결과적이고 하는 건 과정적이다. 퍼포먼스가 필요하긴 하지만, 결과 지향적 사람이 된다는 건 정말 불행한 일이다.

쉼보르스카의 시를 빌려 말하자면, 세상이라는 학교에 우리는 낙제 없는 학생으로 태어났고 두 번이란 결코 없음에도, 왜 결과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어야만 하는 걸까.


'나'라는 자원은 유한하고 죽기 마련이다. 미래를 알 수 없고, 절망이 어느 때고 등 뒤를 노린다면, 우리가 자각하는 자명한 사실이란 오직 스스로를 남김없이 소진하는 삶을 사는 수밖에 없다는 것뿐이다. 이는 결코 결과 지향적인 말이 아니다.


행복은 들이닥친 불행의 도피로부터 오는 안도감과 다르다고 했다. 행복한 삶이란 직면하는 것으로 출발한다고 했다. 어두운 밑바닥을 기어 보고 나서야 기어코 불어오는 희망의 바람에 몸을 맡겨야 한다.


1번 대기표를 받았다고 한들, 후회 없도록 오늘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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