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임울림>
내가 갖는 취미라고 하면 열정의 심지가 빠르게 타올랐다가 빠르게 꺼지는 습성이 있다. 깊이 있지는 않아도 다양한 걸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역시 스페셜리스트라기보다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 벌써 직종도 세 번이나 바꿨으니 신기하다면 신기한 커리어다.
여하튼 이런 습성의 장점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나의 음주생활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위스키를 즐기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에게는 커피가 더 이상 음미를 기반으로 한 향유 행위가 아니며, 술도 마찬가지다. 일을 위한 각성 혹은 일시적 정신 평안을 위한 마비 정도? 생각해보면 진짜 건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위스키다. 홍은동 사는, 아는 형ㅡ아는 형의 별명은 ‘취미 부자’다ㅡ네 집에 놀러 갔다가 천만 원을 호가하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특히, 재즈)과 위스키가 그렇게 잘 어울린다는 걸 알았다. <상실의 시대>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그렇게 재즈를 좋아하는지 추론하면서 잔을 홀짝였다. 시끌벅적한 술자리, 빈 병을 줄 세우고 자랑하는 술자리에 환멸을 느껴온 찰나에 찾아온 아름답고도 행복한 음주생활이었다.
우리네 삶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나와 나, 혹은 타인이 감정을 교류하고 감각을 향유하는 데 있지 않을까. 그것은 곧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내 삶을 사랑하는 것이란 사사로운 감정과 감각을 곤두세우고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요즘이다. 음미하는, 한 잔의 위스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