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임울림>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 따라 교회를 갔다. 두 손 꼭 모아 기도하는 방식을 배웠다.
아,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었지. '인생 진짜 재밌게 해 주세요.'
와, 근데 그 기도, 끗발이 장난 아니다. 누군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고, 시인과 촌장은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고 했지.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면 친구 왈 "ㅇㅇ아, 뭐 요즘 재밌는 일 없냐?"(내가 전기수냐...) 지난날, 호기심 많고 생각 많은 내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관계를 일궜던 과정이 이야기가 되어 돌아온다.
Chapter.1 소개팅
오래 전 일이다. 컨설팅 프로젝트에 나간 적 있다. 다른 업체와 컨소시엄을 꾸려서 일하던 곳이었다. 다른 업체 사람들 중 또래인 분들과 친해졌는데, 그중 나처럼 직종을 전환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바이올린을 전공으로 하셨던 분이었고, 예술에 일가견이 있었다. 일이 바쁘지 않으면 가끔 산책을 하면서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이 지나 그분에게 연락이 왔다. 소개를 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콜.
국내 대학원에서 바이올린 전공으로 석사 코스를 밟고 계신 분이었다. 자기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명징한 사람이었다. 그 명수 옹이 말했던, 중꺾마의 대표적인 표본이랄까. (중요한 건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
어찌어찌 보기로 약속한 날이 찾아와서 만나게 됐는데, 바이올린 가방이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걸음에 자신감이 어려 있었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밥 한 끼 하고 술도 한잔했다. 그분은 최근에 추천받은 하이쿠(일본 시조) 모음집을 읽고 있다고 했다. 교내 도서관 바코드가 붙은 책을 보면서 대학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술자리는 무르익었다. 20대 초반에 청하 먹고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10년이 넘도록 입에 대지 않았는데, 그날 청하가 유독 달았다. 시간이 훌쩍 지나서 다음을 기약하고 자리를 파하는데, 일은 그때 터졌다.
많이 취하셨던 걸까. 아니면 기분이 좋았던 걸까. 그분은 갑자기 내게 "야! 잠깐 바이올린 가방 좀 들어봐"라고 말했다. 너도 바이올린 가방이 잘 어울려-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가방이 무거워서 셔틀을 시키고 싶었던 걸까.
말을 놓은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나는 갑작스러운 호통(?)에 "알았어, 줘"라고 응수했다. 그분은 그러곤 주섬주섬 가방 안에서 교통카드를 꺼냈다. 엄청난 반전(?)이었다. 나는 집 가는 내내 실소를 터뜨렸다.
Chapter.2 학교 선배
A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졸업한 이후 돈을 꿔달라는 연락을 자주 했다. 나는 돈이 사람 관계를 망친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아 온 케이스라 오히려 가깝다면 더욱 빌려줘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선배는 후배들을 잘 챙겼고, 유쾌했고, 재밌었다.
그 선배의 친구인 B 선배가 있었다. 조용하고 과묵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과 열심히 부딪히고 무너졌을 때 찾고 싶은 선배였다. 어느 날 B 선배와 만났는데, A 선배에게 돈을 빌려줬고 몇 년째 못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A 선배는 몇 개월 전 전화번호를 바꾸고 가끔 내게 연락해 안부를 묻더니 돈 좀 빌려줄 수 없냐고 했었는데? B 선배는 A 선배와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A 선배와 멀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부랴부랴 일을 하고 있던 오후. 국외문자 세 통이 왔다. 스미싱이라면 링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단지 A 선배가 도박에 빠져 사채를 쓰고 잠수 탔다며, 갚지 않으면 추심에 들어갈 거라며, 돈 갚으라고 전달하라는 경고성 메시지였다. 이 문자를 받은 직후 학교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다들 같은 문자 메시지를 받고선 무슨 일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머릿속이 얼얼했다.
#
결국 다 사람 사는 이야기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이야기들이다.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자신이 쌓아 올린 업보에 의해 그 씨앗을 틔운다는 점이었다.
삼십 대가 되면서, 굳건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의 태도가 무너져 180도 변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가끔 그 사람들의 눈을 마주하면 총기가 대부분 사라져 있다. 뭐, 살아간다는 게 그런 거겠지- 싶다가도 지난날 나눴던 맑은 마음들이 생각나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맑은 마음, 사라져 버린 게 아닐 거다. 단지 세상과 사람에 상처받아 어딘가 꼭꼭 숨겨둔 것뿐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가끔 나를 찾아와 맑은 마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나부터 정갈하게 가다듬어야지.
윤이상 선생님 묘역에 있던 네 글자를 기억한다.
'처염상정(處染常淨) : 탁한 곳에 있더라도 물들지 않고 맑은 마음을 유지한다.'